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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 세스 노터봄


의식
국내도서
저자 : 세스 노터봄(Cees Nooteboom) / 김영중역
출판 : 민음사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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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징


Q1-1. 책에 등장하는 세 비둘기는 어떤 의미인가?

A1-1. 인니는 아르놀트 타츠와 이별을 하기 전 갈매기에 대한 생각을 한다. 


지금은 아르놀트 타츠가 그 대상이었다. 아르놀트 타츠는 세상과의 관계에 실패했다. 때문에 높고 날카로운 어조로 마치 세상의 통치자라도 된 듯 세상을 부정했다. 이 부정의 메신저가 다서 번째 복음사가가 되었다면 그는 갈매기를 상징으로 삼았을 것이다.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듯 음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툭 솟아난 바위위에 앉아 있는 고독한 잿빛 새. 인니는 자연환경을 다룬 영화에서 갈매기를 본 적이 있었다. 갈매기 근처에 몰래 다가가 망원 렌즈로 찍은 영화였다. 갈매기는 갑자기 주둥이를 벌리고 분노하듯 혹은 경고하듯 비명을 지르면서 한두 번 힘찻 날개짓을 하고는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보이지 않게 조용히 물결치는 기류에 마치 돛을 단 듯 계속 홀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다시 무엇인가 잘려져 나가 망가진 것처럼 가끔씩 비명을 질러 댔다.(96p.)


인니는 아르놀트 타츠를 부정의 메신저로, 그리고 그것의 상징을 갈매기로 보았다. 가끔씩 비명을 질러대는 그 갈매기는 도른 시에서 벗어나 비둘기로 변화한다. 아버지는 갈매기였고 아들은 비둘기였다. 그 둘 모두는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결코 평화롭거나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둘은 모두 자유롭다. 자유로움이 마냥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새의 이미지를 통해 아르놀트 타츠와 필립 타츠를 설명하고 했던 것이 아닐까. 도시를 떠나 산 속에, 어떤 계곡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아르놀트 타츠에겐 바다를 누비는 갈매기를, 도시 속의 다락방에 자신만의 수도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갔던 필립 타츠에게는 비둘기를. 아들 없는 아버지와 아버지 없는 아들 두 사람에게 인니가 주고 싶었던 선물은 아니었을까.



Q1-2. 지타, 리다, 페트라 등의 다양한 여자들은 인니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니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A1-2. 어떤 것도 인니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니가 한번,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했던 자살 시도는 자신을 떠나간 여자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도. 하지만 나에겐 그 마저도 그만의 의식이 되긴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인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그에겐 아르놀트 타츠와 필립 타츠를 만났던 그 시기만이 그의 인생이 기록되었던 순간이었을 테니까.



[2] 의식


Q2-1. 필립 타츠와 아르놀트 타츠가 인생을 각각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을 어떻게 의식화하고 있는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는가?

A2-1. 아르놀트 타츠는 서구의 카톨릭에 반하는 방식으로, 필립 타츠는 동양의 철학에 기대는 방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르놀트 타츠는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당신과 저, 당신의 손과 그 접시, 이 와인 병, 나머지 세상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죽음까지도 없어질 것이며 모든 인간의 죽음, 죽음과 함께 모든 인간의 기억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p.120) 이 말은 결국 카톨릭 교리 전부를 부정하는 말이다. 세상이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이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 결국 신, 이라는 건 없고 인간에 의해 세상은 이루어진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는 죽도록 인간을 혐오했다. 그 자신을 혐오할 수 밖에 없던 그는 그만의 자유 의지를 발현하는 것을 혐오했다. 그래서 모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사용했을지 모른다. 그 시간 속으로 그를 의식화 할 때 만이 그는 살아있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립 타츠는 비슷한 것을 꿈꾸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행해갔다. 그는 최소한 세상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주 3일 근무를 했고, 요가를 했다. ‘나’, ‘자아’를 찾아 다른 ‘무언가’로 나아가기 위한 행보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죽기 위해, 의미 있게 죽기 위해 오직 그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이 같았다. 그래서 그의 죽음 이전, 그의 모든 생에는 별 의미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다락방에서, 혹은 여행지에서 살아갔다. 그는 그의 죽음만을 의식화 했다. 죽음 이전 다회를 통해 그의 위령미사를 드렸다. 그는 죽음으로써 그의 삶을 그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



Q2-2. 인니는 두 타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또, 인니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두 타츠와 같은가, 다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2-2.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르놀트 타츠와의 만남 이후, 그는 그 시점을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 날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아들 없는 아버지는 그에게 큰 의미였다. 그러나 그는 굳이 그를 따라가려하거나 그의 모습을 배우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그저 그는 두 타츠와 함께 있을 때만이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두 타츠보다 자신을 더, 인간을 더, 이 세상을 더 혐오했는지도 모른다.


Q2-3. 자살이 세 사람(아르놀트 타츠, 필립 타츠, 인니)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세 사람 모두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이며, 인니가 자살을 실패한 까닭은 무엇일까?

A2-3. 아르놀트 타츠와 필립 타츠에게 자살은 자신의 제사를, 미사를, 의식을 끝내는, 그래서 비로소 어딘가로 혹은 무의 상태로 변모하는 아주 중요한 마지막 의식이었을 것이다. 아니 마지막이 아니었을지도, 인니의 꿈에 나오듯 그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어느 세계로 흘러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인니는 평생 자살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의식에 그들의 제사에 동참하지 못할 것이다. 인니는 지금 이 세계에 그대로 머무르다 이 세계에 남을 것이다. 육신이 끝을 다하는 것 만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그리고 인니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슬프거나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가 인니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서라든지, 돈이 많아서라든지, 후견인이 존재해서라든지의 이유는 아니다. 내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인니가 두 타츠와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세계에 갈 수 없으리란 것은 단정할 수 있다. 인니에게는 처음 도른 시에 가던 그 날이 이미 다른 세계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 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두 타츠 이전에 그 세계에서 그들을 맞이했는지도, 어쩌면 두 타츠가 그의 다른 세계였을지도.


나중에 밝혀졌지만 드라이브 행선지는 도른 시였다. 그러나 도른 시로 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마 지하 세계나 저승 세계의 지도가 있다면, 도른 시는 그 입구에 있을 것이었다.(51p


의식은 결국 굳게 닫힌 신비의 낙원으로 통하는 길을 가르쳐 주며, 내적인 경험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란 특이한 종으로,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천상에 이르는 황혼빛 통로에 더 쉽게 다다르게 하는 물건, 아니 완성된 물건을 원한다. 

세스 노터봄 <의식>, 215p.


Q2-4. 이 책의 제목이 의식(Rituelen)인 이유는 무엇일까?

A2-4. 이 책에서는 두 가지의 의식이 끊임없이 반복 된다. 하나는 카톨릭의 미사 의식 이고, 다른 하나는 다도, 요가 등 동양의 의식이다. 결국 이 책의 주인공은 인니가 아니다. 의식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사제인 아르놀트 타츠와 필립 타츠이다. 정치화되고 관습화되고 세속화되는 종교에 대한 반감도 느껴졌다. 두 타츠는 굳이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을 인니에게 전파하려하고 싶어 하지 않아한다. 만약 그 둘이 자신의 믿음을 인니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면 아르놀트는 그 계곡에 초대했을 것이고 필립은 다도를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에게는 포교가 전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신의 종교, 자신의 의식, 나 자신이 사제가 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리고 작가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인니가 두 사람을 만나며 겪는 변화는 없다.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서술하지만 사실 인니는 사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제가 될 수 없는, 종교로써 승화될 수 없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탓하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Q2-5. 세 사람(아르놀트 타츠, 필립 타츠, 인니) 중 자신과 가장 가깝다고 느낀 사람은 누구인가? 본인의 삶을 의식화한다면, 본인의 정체성을 구체화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A2-5. 인니보다는 두 타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타츠는 아버지 없는 아들이자 아들 없는 아버지였지만, 나는 내 가족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기에 완전히 두 타츠와 같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의 의식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그들 곁에 가족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가끔 나는 나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바로 죽어도 아무 상관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말도 결코 나에게 가족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나는 가족으로 인해 두 타츠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만의 의식을 행한다는 그 점은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 또한 인간을 혐오하고 자아를 찾는 다는 것에 콧방귀를 뀌기도 하니까 말이다. 두 타츠는 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아를 찾는 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둘은 자기 자신을 무척이나 혐오했으니까. 그 점도 나와 그들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어떻게든 나를 사랑해보려 애쓰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 나의 진짜 모습을 찾는 것에 대한 생각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나의 답은 방식을 모르겠다는 것. 한번 더 회의해 보는 것.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나란 존재를 혐오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을 나의 의식화라 하자.


Q2-6. 책을 읽고 느낀 다양한 생각들과 흥미로웠던 점들, 토론에 다루고 싶은 내용 등을 포함한 소감을 적어주세요.

A2-6.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녔고, 미사 의식을 진행하는 역할도 오래간 맡아왔다. 그때마다 신부님이 의식을 행하는 모습을 (내 피의 잔이니 너희는 이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와 같은) 아주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왔다. 초등학생때는 신부님의 그 모습을 장난스레 따라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즐거웠다. 의식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는데 신선한 생각의 계기를 주어 발제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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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중 가장 재미있었던 책. 토론도 즐거웠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고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