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 book lover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 한스 애빙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국내도서
저자 : 한스 애빙(HANS ABBING)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09.03.16
상세보기



Q1-1. 예술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A1-1.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곧 예술이라 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범위는 아주 넓은 편이다. 음악, 미술, 영상 등 뿐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하는 모두를 예술가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꿈도 예술가이다. 물론 요즘에 드는 여러 고민들 때문에 내가 원래 바랐던 ‘Technology Artist’는 조금 더 생각해 볼 문제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의 생각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고 또 그것을 예술이라 일컫는 데는 변함이 없다.


Q1-2. 당신은 예술을 즐기고 있는 편입니까? 어떠한 예술이라도 상관없으니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얘기 해 주세요.

A1-2.

  문화생활, 이란 말이 있다. 보통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거나, 공연 등을 자주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생활 잘 하는 사람’ ‘문화생활 좀 하나보네’ 혹은 그 반대의 사람들에게  ‘문화생활 좀 해.’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한다. 내가 가장 최근에 했던 강연 주제가 바로 그것을 다룬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생활 한다는 것’이 발제자가 묻는 ‘예술을 즐긴다’와 비슷한 표현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단지 나의 ‘취향’일 뿐이고 취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일 뿐이라고. 그러니 문화생활, 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예술을 즐기고 있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고, 좋아하는 시를 읽고 있고, 좋아하는 영화의 이야기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물었으니 생각해보면 아직도 생각나는 공연은 2011년, 정준일 솔로공연이다. 공연장이었던 삼청동의 ‘시네 코드 선재’는 예술영화 상영관이지만 특별한 경우 무대를 꾸며 공연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무대가 객석과 매우 가깝고 공연장 자체가 얕고 넓어서 매우 좋은 음향시설이 아님에도 좋은 울림을 준다. 이날 공연에 온 관객들은 모두 그와 함께 웃고 울었다. 그처럼 관객과 아티스트가 동화된 공연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곳에는 좋은 음향시설도 비싼 악기도, 시간을 들인 영상도 없었지만 어느 공연보다 마음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에 의해 감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처럼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예술의 기억은 그 무엇보다 ‘사람’이 생각나는 공연이다. 그 공연을 함께 보던 객석의 ‘사람들’, 그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사람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 이 모두가 진정으로 어우러진 공연이었기에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는 공연인 듯 하다.

  

Q2-1.  제시문 (바)를 보면 글쓴이는 자신의 가난함을 예술로써 승화시키려하며,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렇게 예술가는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나요? 예술가의 가난은 숙명이라 생각하나요? 작가의 입장이든, 혹은 다른 입장이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주면 됩니다.

A2-1.

예술창조보다는 노동 쪽이 완성도에 대한 판정 기준이 훨씬 ‘녹록하다.’ 예술은 어느 정도 고도의 기술이나 숙련, 노력의 성과가 있다고 해도, 만들어낸 작품이 ‘다른 사람과 똑같다’면 가차 없이 ‘무가치’한 것으로 판명난다. 하지만 노동은 ‘다른 사람과 똑같다’고 해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유용한 것을 생산했다면, 동등하게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노동은 성취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예술은 그에 비해 훨씬 가혹한 요구를 받는다. 그럼에도 정말 신기하게도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노동을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기피하고, 그것이 마치 자기가 바라는 자기실현을 위해 ‘창조’해야 할 것으로 멋대로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일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 지극히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라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대접을 잘 받는다.(싫은 일을 견디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창조’로 인해 고뇌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냉대를 받는다(부탁도 하지 않은 일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우치다 타츠루,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 p.107


  위 글은 내가 6주차에 발제 했던 책에 나오는 글이다. 사실 처음에는 우치다의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다시 읽고 또 읽고 여기저기에 가서 이야기 나누다보니 우치다의 이 말도 일면타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부탁도 하지 않은 일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냉대를 받는 것이다 라는 말. 그 냉대라는 것은 그저 사회적 시선 뿐 아니라 경제적인 요소도 아주 크게 작용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가에게 가난이란 숙명이다. 그 재능을 이용하여 다른 일을 한다면 모르겠으나(이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술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가난을 벗어나긴 쉽지 않으리라. 앞에서도 말했듯 예술은 자기 표현이고 자기 표현에 필요한 돈을 자기가 마련하거나 누군가가 후원해주지 않으면 이어나가기 힘들 테니까 말이다.


Q2-2.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후원은 타당하나요? 제시문 (마)에서 같이 예술의 종류에 상관없이 티켓은 고가임을 알 수 있는데 타당한 가격이라 생각하나요? 모두가 예술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까요? 

A2-2.

  꼭 티켓 가격이 ‘비싸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공짜 티켓 이라도 내가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배고플 때 먹는 1500원짜리 밥버거 보다도 가치가 없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고가라고 부르는 그 티켓값들은 공연 시장 안에서 보면 그리 고가도 아니다. 공연에 필요한 장비, 시설, 사람들을 모두 쓰는데 공연 티켓값이 10만 원 선이라면 그것은 사실 타당한 가격이다. 이상, 6월 5일에 ‘NELL’s Season 2015 – Beautiful day’ 공연에 113,500원 내고 ‘겨우 겨우’ 가는 넬동민의 이야기였다. 예술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많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좋은 공연, 전시를 공짜로도 맘껏 볼 수 있고.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의 사이트, 여러 트위터의 이벤트로도 가능하다. 조금만 품을 내면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널려있다. 정말로. 그러니 예술에 관한 한 비싼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도의 문제다. 항상.


Q2-3. 예술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까요? 혹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은 경제적인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의 이유로 설명해주셔도 됩니다.

A2-3.

가난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조금 더 돈이 많아지길 꿈꿀 것이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아기를 데리고 나와 살고 싶어도 아기가 그간 먹던 비싼 ‘분유’를 금방 싼 분유로 바꿔버릴 순 없다. 가난은 고통이다. 결코 멋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예술은 돈을 벌어다주진 못한다. 자기가 마련하거나 누군가에게 후원을 받지 않으면 이어나가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예술을 꿈꾸는 이들은 다른 노력을 함께 하며 자신의 꿈을 이어나간다.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그 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 부유해지고 싶은 야망 있는 예술가라면 또 그의 방법을 취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 그들에 대해 비난의 시선을 보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가난하게 그림만 그렸던 반 고흐를 마냥 칭송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반 고흐에게는 동생 테오가 있었다. 형은 가장 멋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얼마든지 그림을 그리라는 응원을 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의 예술가에게도 그런 응원이 먼저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 지원은 망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국가는 응원이 되어 주진 못한다. 그저 돈을 주고 증빙자료를 원할 뿐이다. 나라 돈 이라는 게 그렇다. 이상한 데 펑펑 날리긴 쉬워도 정말 필요한 데 조금 주긴 어려운 법이니까. 


Q3-1. 상위 음악과 하위 음악의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상위음악 (고급음악)과 하위음악 (저급음악)은 무엇이나요?

A3-1.

  저자가 말하는 상류사회와 하류사회에 대해 이해는 가나,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명확히 이해되진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상위음악과 하위음악에 대해 생각해본다. 중학생 때 (한창 넬이라는 밴드에 빠졌을 때 = 중2병)는 아이돌음악은 그지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힙합도 발라드도 싫어했다. 오직 락 음악만 들었다. 그것도 하드코어로. 조금 심한 중2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확고한 취향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나의 취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인가 보다. 그래서 요즘은 딱히 무엇이 더 상위의 것이고 하위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그저 쉽게 소비되는 것과 소중히 여겨지는 것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샤이니의 새 앨범이 나왔다. 우리 언니(샤이니 광팬)는 나에게 샤이니 음악을 들어보라고 자꾸만 권하지만 나는 굳이 샤이니의 신보를 찾아듣지 않는다. 어차피 길거리에 다니다보면, 음식점에 가보면 들릴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쉽게 소비되는 음악들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길거리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 이문세의 1집이라거나, 디어클라우드의 <늦은 혼잣말>같은 곡에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구해 듣게 된다. 


Q3-2. 현대음악은 20세기부터 21세기 초까지 100여 년 동안의 음악을 말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예술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다른 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것이 현대음악 혹은 현대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시문 (라)에서 예로 들어준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를 듣고 어떤 느낌이었나요? 예술이라고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현대예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A3-2.

  제시문(다)를 재밌게 읽었다. 역시 소크라테스는 사람을 갈궈야 제 맛 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가 묻는 건 결국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가. ‘음악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는가 였을 것이다. 최 아무개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은 이것은 어떤 음악 이다라고 정의 내리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음악의 본질에 대한 기준은 없는 상태라고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그에게 묻고 싶었던 건 교과서에 나오는 음악의 정의 따위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음악은 무슨 의미인지. 그래서 서양 음악이, 그레고리오 성가가, 사물놀이가, 비틀즈의 음악이 그에게 무얼 의미하는 지 묻고 싶었던 것일 테다. 결국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단 건 그에게도 그 자신만의 음악의 기준이 없기 때문일 테다. 현대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그저 기괴하고 특이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상식적으로 ‘아름답지’않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대예술은 그런 각자마다의 기준을 인정해주는 것 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 소크라테스 : 음악이란 무엇인가?

     최 아무개 : 음악 교과서에서 음악의 3요소가 리듬, 선율, 화성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리듬, 선율 화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음악이겠지요.

     소크라테스 :  한국의 전통 음악에는 화성이 없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는 것인가?

     최 아무개 : 그야 한국 전통 음악이 좀 미개해서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화성이 없으면 미개한 음악이라는 말이군. 서유럽을 제외한 모든 문화권의 전통 음악에는 화성                   이 없으니 그것들은 전부 미개한 음악, 아니, 자네 말대로 하면 음악 아닌 것이 되겠군. 그런데                   서유럽에서조차 화성의 역사는 길게 잡아 300~400년밖에 안되지 않나? 그렇다면 그 이전의 음                  악은 화성이 없으니 음악이 아니겠군. 가령 그레고리오 성가는 음악이 아니겠네?

     최 아무개 : 아니, 그건 아니고요. 그레고리오 성가는 아름다운 선율을 갖추고 있으니 음악이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선율이 없으면 음악이 아니라는 건가?

     최 아무개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한국의 사물놀이는 음악이 아니라는 얘기군.

     최 아무개 : 사물놀이는 리듬이 있으니 음악입니다. 말을 좀 수정해야겠습니다. 음악의 3요소 가운데 어느 하                   나를 갖추고 있으면 음악입니다.

     소크라테스 : 자네 존 케이지라는 괴짜 친구의 <4분 33초>라는 작품을 알고 있겠지? 구체 음악concrete                       music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가? 자연적인 음향을 녹음해서 음 재료로 삼는 음악 말일세. 그런                    데서는 리듬도 선율도 화성도 찾을 수 없던데….

     최 아무개 : 그런 건 현대 음악이라 예외적인 것이지요.

     소크라테스 : 현대 음악은 음악이 아닌가?

     최 아무개 : 현대 음악도 음악은 음악이죠.

     소크라테스 : 음악은 음악인데 음악이 아닌게 현대 음악이라는 얘기군. 현대 음악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                    인데, ‘현대 음악’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을 보면 비틀스의 음악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네.                   비틀스의 음악은 현대 음악이 아닌 건가?

     최 아무개 : 그건 대중 음악이잖습니까?

     소크라테스 : 대중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는 말인가?

     최 아무개 : 대중 음악도 음악은 음악인데 말이지요……. 근데 제가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죠?

-최유준,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책세상, 42쪽.


Q4-1. 대한민국은 예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A4-1. 

‘사랑’이라기보다는 ‘이용’정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의 논리 안에서 예술이 살아남기가 쉬울까. 위에서도 답변했듯 부탁도 하지 않은 일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람들을 보통 우리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예술 한다. 라는 말도 사치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도 예술을 쉬운 것으로 끌어내리려 노력하고 그래야만 예술을 좋아하는 내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끄덕일 수 있게 된다. 그건 결국 사회의 시선이 ‘예술’ = ‘어렵고 사치스러운 것’ 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의 주체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예술을 어렵고 사치스러운 것으로 보는 한 이용이 아닌 사랑이 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생각한다.


Q4-2. 미래에 당신의 자녀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찬성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해줄 건가요? 참고로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하는 것이란 쉽지 않습니다. 바이올린 한 대의 값은 10,000만원이 훌쩍 넘으며 미술 전공생은 너무도 많아 경쟁자가 치열합니다. 무명의 연극배우들은 대학로 극장에서 오늘도 돈을 벌기 쉽지 않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요?

A4-2.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우리 주변만 둘러보아도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하고 싶은 게 없어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런데 내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축복받은 아이라니, 빚을 내서라도 지지해주어야 마땅하다.


Q4-2.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예술은 왜 필요할까요?

A4-2.

살아있다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서?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예술을 자기표현이라 보았으니, 다른 이의 예술도 그 마다의 표현이라 본다.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슬픈가.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이 자기 자신마저도 붙잡을 수 없다면 붙잡고 표현 할 수 없다면, 나에겐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