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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무진기행
A1-1)
정말 끔찍하게 힘들 때는 잠을 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때까지 잠을 잔다. 자고 또 잔다. 하지만 잠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괴로울 뿐이다. 잠은 힘든 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여행에 가든 공연장에 가든 사람들 속에 있든 간에 내 머리를 떠다니는 힘듦과 고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잠을 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괴롭다. 또 다른 괴로움을 안고 살 뿐이다. 나는 매번 새로운 여행지에서, 그리고 공연장에서, 사람들 속에서 내 머릿속 생각을 떨쳐내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생각하지 않으리,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그렇게 웅장한 데드마우스의 디제잉 앞에서도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나는 결코 도망칠 수 없었다. 꼭 우리 외할아버지 폐에 붙은 니코틴들처럼 내 뇌 속 어딘가에, 찌꺼기처럼. 붙어 있었으니까. 떼어낼 수도 없애버릴 수도 없는 찌꺼기들.
그러니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도피할 무진이 없다. 어딜 가든 이 찌꺼기들이 날 따라붙으니까.
A1-2)
무기력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왠지 안개로 둘러싸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무기력할 것 같다. 새로울 것 없는, 그저 매일 보는 안개. 안개의 신비로움과 안개의 낭만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건 안개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만이 떠올릴 수 있는 상상이다. 겪어보지 않은 채 낭만으로 상상하는 것은 싫다. 그 낭만 이라는것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자꾸만 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니까. 다시 말하면, 나는 무진기행의 무진, 그리고 안개, 라는 이 키워들을 매우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떠올렸었고, 이 소설은 그대로이지만 내가 변했기 때문에 무진을 떠올렸을 때 무기력한 사람들, 이라는 현실이 떠오르는 것이다.
A2-1)
자꾸 아이, 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는 게 짜증이 좀 났다. 뭐 이해는 한다만. 그냥 기회주의자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더 이상 진심, 이나 의미,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집안도 넉넉잖고, 시골 동네에서 음악선생질이나 하는 것도 지겹고, 돈 많은 남자 한 번 꼬셔보려 했는데 이상한 중늙은이가 허세를 부리고, 자기는 아주 진심 이라는 샌님 같은 동료 선생만 꼬이고. 휴, 그녀 입장에서도 짜증날 만도 하다. 이런 상황에 돈 많은 서울 사장님이라니. 아이, 보다 더한 애교를 부릴 만도 하다. (더한 걸 이미 부린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서울’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꼭 서울이 중요한 건 아니다. 만약 남자가 부산에서 온 남자였다면 ‘부산’이었겠지. 그녀는 그냥 졸라 기회주의자일 뿐이니까. 그건 그녀의 인생이다. 내가 ‘졸라’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건 그녀를 타박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렇게 강조하면 더 아니게 들리겠지만) 사실 타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싫어하고, 제일 되고 싶지 않은 인간상이니까. 자신의 정해진 무엇 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기회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상, 기회주의자.
A2-2)
도피 속에서의 또 다른 도피가 아닐까. 이번에 그가 무진에 온 것은 무언갈 피해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서울의 여러 일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도피라 본다면, 그는 그 안에서도 또 다른 도피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의 마음대로 해보았던 기억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가 자신의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은 여자가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났는데 그가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기 마음대로 해본 것 없는 그로부터의 도피. 다시 서울로 돌아갔을 때 자신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을 해야한다는 것으로부터의 도피. 그 도피의 상징처럼, 인형처럼 인숙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인형을 서울로 데려가면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계속 갖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비록 진짜 주체에 의해 좌절 되기는 했지만.
A2-3)
작가가 무슨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지는 못했다. 그저 무진을 이야기했고, 그 무진의 사람들을 이야기했고.. 모든 것은 나의 생각일 뿐. 하지만 이렇게만 답하면 발제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조금만 더 내가 무슨 메시지를 얻었는가를 생각해보겠다. (...............................생각중....................................) 돈 많은 과부를 잘 얻은 한 남자가 금의환향 후 젊은 여자랑 한번 잤다가 다시 돈 많은 과부의 부르심으로 서울로 돌아가는 이야기, 니까... 사실 내가 이 소설에서 남자의 생각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돈을 그렇게 밝히지도, 명예를 과시하지도, 그렇다고 여자를 그렇게 사랑하거나 소유하려하지도 않았다. 딱히 왜 사는지,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겠는 그런 인물이었다. 어렸을 때 전장으로 나갈거라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 말에도 딱히 어떤 결의나 다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책 속에서 ‘나’는 무진의 안개를 이야기하지만, 진짜 안개같은 사람은 ‘나’였다. 투명하지도 않고 불투명하지도 않고 애매한 반투명에,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맑은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축축한 상태. 신비로워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냥 물방울일 뿐인 것. 그것이 안개가 아니었는가? 이 말은 어쩌면 ‘나’와 같다. 뭣도 없는 사람. 의미도 돈도 여자도 사랑도 친구도 가족도. 모든게 있지만 사실 모든게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닌가. 그럼 작가는 이런 사람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글쎄... 작가의 생각도 안갯속이다. 사실 그냥 이런 인간이 있었다. 라는 걸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을 뿐 아닐까. 우리에게 안개처럼 살아라! 서울에 올라가라! 돈 많은 과부를 만나라! 성악보단 목포의 눈물을 불러라! ...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테니까.
B. 서울 1964년 겨울
B1-1)
바람은 차갑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몸만은 후덥지근하다. 조금의 열기를 가진 채 내 옆의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니 추위가 조금 더 가신다. 불이 붙는다. 내뿜는 연기에 이젠 더 이상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관방에 눕는다. 이젠 술도 다 깼다. 조금씩 추위가 찾아온다. 이 추위는 술이 깨서 느껴지는 추위일거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잠에 든다. 알 수 없는 한기에 잠에서 깬다. 술로도 불로도 가시게 할 수 없던 그 한기가 64년 서울, 아침에서야 비로소 느껴진다. 그 한기에 나는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B1-2)
무언가 하얀 것이 우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곳에서 불타고 있는 건물 족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 비둘기는 불 속으로 떨어졌다.
"무언이 불 속으로 날아 들어갔지요?" 내가 안을 돌아다보며 물었다.
"예 뭐가 날아갔습니다." 안은 나에게 대답하고 나서 이번엔 아저씨를 돌아다보며, "보셨어요?"하고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잠자코 앉아 있었다.
불 속에 던진 돈과 함께 그는 내던져졌다. 그의 외로움이 극에 달한 순간이 이때가 아니었을까. 돈을 던지며 그는, 그의 생도 던져버렸다. 그의 극한의 슬픔이 느껴지는 구절이었다.
B1-3)
내가 B1-1에서 한 서술의 주체는 안이다. 그는 한기를 느낀 것이다. 생의 한기. 그 밤 내내 아저씨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그였지만 그는 그가 느낀 한기를 아침에서야 알아챘다. 술기운으로 불의 연기로 느끼지 못했던 그 한기. 그 한기에 몸서리치게 놀란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 글쎄, 이 한기가 무얼지 생각하고 있을까. 그도 그 한기에 죽어버릴까, 생각했을까. 어쩌면 오늘 아침은 뭘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그에게 한기는 이미 익숙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C. 김승옥과 김승옥의 문장
C-1) 김승옥을 읽으며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함께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적어보시오. 그리고 그것을 한 번씩 필사해보시오.
C1-1)
> 무진기행
아니, 나는 다시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1964년 겨울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오. 아직까진……" 그가 말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예."라고 나는 대답했다.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본 것이 있으세요?"
"가만 계셔 보세요." 그는 안경 속에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 동안 표정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없어요. 나도 파리밖에는……"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뭐가요?"
"그 뭔가가. 그러니까 생(生)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김 형이 왜그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은이렇습니다. 밤이 됩니다.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말입니다. 김 형은 그렇게 안 느낍니까?"
"글쎄요."
"나는 사물의 틈에 끼여서가 아니라 사물을 멀리 두고 바라보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글쎄요. 좀……."
"아니 어렵다고 말하지 마세요. 이를테면 낮엔 그저 스쳐 지나가던 모든 것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맨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없는 일일까요? 그런, 사물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는 일이 말입니다."
"의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난 무슨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종로 이가에 있는 빌딩들의 벽돌 수를 헤아리는 일을 하는 게아닙니다. 그냥……."
"그렇죠? 무의미한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그걸 모릅니다. 김 형도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한번 함께 그거나 찾아볼까요. 일부러 만들어 붙이지는 말고요."
"좀 어리둥절하군요. 그게 안 형의 대답입니까? 난 좀 어리둥절한데요. 갑자기 의미라는 말이 나오니까."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밤은 책이다(이동진)
이 계절에 당신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나요. ('서울 1964년의 겨울'의 주인공들처럼) 누군가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이고 계신가요. (그 소설 속 대화처럼) 당신도 파리를 사랑하나요. 날개가 달린 것 중에서 손에 쥐어볼 수 있는 것은 정말 파리 밖에 없다고 느끼고 있나요. 우리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입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서른일곱입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마흔아홉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불안하지만 생생한 2012년 겨울입니다.
무진기행을 읽으면서는, 왜 이 책을 필사 1순위 소설이라 하는지 알겠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었고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는 내가 전부터 좋아하던 그 문구가 이 책이었구나, 싶어 무릎을 탁 쳤다. 열아홉의 나는 ‘우리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입니다’라는 말과 ‘그리고 지금은, 불안하지만 생생한 2012년 겨울입니다.’라는 말을 그리도 마음에 새겼더랬다. 저 두 문장을 쓰고 또 쓰면서 불안하지만 생생하다. 나는 이제 겨우 열아홉이다. 라는 말을 되뇌었던 것 같다. 그때의 시간들이 떠올라 조금은 행복했다. 누군가의 글을 옮긴다는 건 그 사람과의 교류이다. 그 사람의 말 하나하나를 나의 말로 바꾸는 작업이다. 그 만큼 그 행위는 소중한 것이다. 그 행위의 소중함을 잘 깨닫게 하는 소설 두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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