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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저자
사무엘 베케트, 사무엘 베게트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고도를 기다리며'고도'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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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이처럼 기다려 본적이 있는가?

Q1-2. 왜 기다리는 것인가?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게 만드는가?


A1-1.

그 무엇보다 힘든 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건다.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타들어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내가 하는 것은 기다리는 일 뿐이다. ‘나’는 사라지고 ‘기다림’만 남는다. 그 기다림의 끝이 다가오면 ‘나’는 완전히 무너져 바닥으로 솟구쳐만 간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무엇도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다. 나를 자유와 해방으로 가져다 줄 어떤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믿었다. 나의 메시아였던 하느님께 드렸던 그 많은 기도는 나의 자유와 해방을 바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잘 지켜봐 달라는 믿음의 약속을 받는 기도였다.


A1-2.

애타게 원하기 때문에.

너무나 보고 싶기 때문에. 

기다림의 대상이 내 옆에 있어야만 ‘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Q2-1. 제시문 () (럭키의 대사), 당신은 어떻게 읽었나?

Q2-2. 극중 인물의 대화 속에서 어떤 일관성도 찾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말만 한다. 우리는 이런 희극을 읽으며 비웃기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희극은 삶의 반영이다. 헛소리하는 모습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도, 자기말만 하는 상황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파편화된 관계도 현대사회의 반영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삶은 이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을 변호해보아라.


A2-1.

세 줄 정도 읽다가 한 장을 넘겨보고 또 한 장을 넘겨봤다. 그리곤 마지막 세 줄을 읽고 1부의 나머지 부분을 계속읽었다. 즉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럭키의 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왠지 무엇인가로 빠져들 것 같았기 때문에 무서웠다. 2부까지 다 읽은 후 에세이 양식에 링크되어 있는 연극 영상을 보았다. 럭키의 속사포 대사를 꼭 보라는 발제자의 말에 영상을 12분에 맞춰 재생했다. 무서웠다. 내가 글로 읽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 배가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빨려들었고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허무함을 느꼈다. 왜 그런 생각이 바로 들었는지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럭키의 대사를 통해 나는 내가 인간임을 보았고 그것이 기분 나쁜 일임을 느꼈다는 것이다. 


A2-2.

타인에 대한 공감, 타인에 대한 이해.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는 삶에 있어 저마다의 우선순위를 갖는다. 돈이 될 수 있고 사랑이 될 수 있고 자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파묻혀있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우선순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생각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 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오해밖에 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은 타인에 대한 이해, 그로부터 나오는 헛소리로 이루어지지 않은 진실한 대화들, 그런 이상적인 것들은 영영 불가능 한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나도 여전히 찾는 중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절대적인 옳음이 없더라도 내가 택하고자 하는 옳음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긴 한 것인지. 모든 물음이 떠오른다. 나의 삶도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잘해봤자, 오해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삶을 이어나가고. 어쩌면 오해를 하는 노력조차도 기울이지 않으며 사람을 대하고 또 ‘나’를 대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것이 진정 나의 생각인지, 또 이것이 나의 생각이라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것이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긴 한건지 알 수는 없다.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나’다. 그 마다의 ‘나’가 있고 우리는 그 사이의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 같은 ‘나’이기에 ‘너’로 인식하는 순간 모든 단절되고 파편화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이 또한 그저 먼지처럼 놓인 답일 뿐일지도 모른다. 


Q3-1. 그대의 고도(Godot)는 무엇인가?

Q3-2. 그대의 고도(Godot)를 버릴 수 있는가?

 


A3-1.

나의 고도가 없다. 말하면 사실 거짓일지 모른다. 나의 고도는 . 다르게 말하면 나의 운명이랄까. ‘이미 쓰여져 있는:maktub'어떤 것이다. 기다림은 어렵다. 기다린다는 것은 곧 믿는다는 것이다. 그 존재를 믿고 있기에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기다림의 행위는 정말이지 고역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지속해 나간다는 건 인간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다. 보이는 것을 꿈꾸고 결국 그것을 성취해나가며 사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갈망하는 행위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 가장 상식적이고 오랜 역사를 가진 행위이다. 우리는 늘 기다렸고, 또 기다렸고 기다려왔다. 각자의 무엇인가를 기다려왔다.

 

A3-2.

버릴 수 없다. 내가 나를 어찌 버리겠는가. 나에게 있어 나의 고도를 버린다는 것은 곧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미와 비슷할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정말 ,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다면 그 날이 아마 나의 고도를 버리게 되는 날이지 않을까. 나의 고도는 결국 나를 있게 하는 힘이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