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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못난 아빠 / 김영오



못난 아빠

저자
유민 아빠 김영오 지음
출판사
부엔리브로 | 2014-11-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딸 유민이를 잃고서야 못난 아빠, 못난 시민임을 깨달은 아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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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416일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지하철에서 창밖을 보니 미세먼지가 자욱해 앞에 있는 건물들도 다 안보일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지하철에서 찍은 풍경과 함께 '이건 거의 고담 시티 수준이다. 언제 서울이 이리되었을까' 라는 말을 트위터에 남겼다. 오후 123분의 일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난 후였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친한 오빠가 생일이라,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동아리방에 갔고 좋은날인데 사고가 나서 슬프다. 마음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한 번 더 트윗을 남겼다. '차갑고 깜깜한 바다 속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그들이 견디고 있을 시간을 내가 직접 느낄 순 없지만 그 시간이 눈에 그려져서 또 그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많은 이의 마음이 그곳에도 가 닿길.' 오후 820분의 일이다. 당연히 그들이 그 시간을 견디고 있을 거라고, 견뎌야 한다고. 조금만 더 견디고 있으면 국가든 누구든 가서 구해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면 우리가 걱정하는 마음이 닿고, 구조하려는 의지가 닿으면 조금만 더 견디면

조금만 더...

  사고 사흘째 418일 오전 1150, 나는 거실 TV 앞에 앉아 세월호가 완전히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었다. 기도도 걱정하는 마음도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그 배와 함께 침몰하는 듯 했다. 그리고 정말 배가 침몰하듯 나의 세월호에 대한 생각 또한 침몰했다. 구해줄 거라 믿었기에, 그 정도의 나라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에, 구하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상태는 절대 아닐 거라 굳게 믿었기에 그랬다. 그저 세월호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전했다. 너무나도 가볍게.

  그렇게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보기 만한 것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때 내가 가볍게 말하고 전했던 그 생각들이 그간 잊고 지낸 그 말들이, 이제야 비수가 되어 마음 한 구석에 꽂힌다. <못난 아빠>,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으며, 또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 참석하며, 서우가 쉬지 않고 참석하는 세월호 촛불 문화제를 지켜보며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눈을 똑바로 뜬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그때처럼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지 않고 싶어서. 더 이상 가볍게만 말을 전하고 싶지 않아서.

  박민규 작가가 말했듯,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는 한 배에 탔다. 태생부터 기울어진 이 배는 기울어짐을 유지하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의 안정이다. 그 기울기를 정하는 것은 가장 아래에 실린 국민의 몫이 결코 아니다. 국민들은 그저 그 기울기에 맞추려 아등바등 살아갈 뿐이다. 국민이다. 시민이다. 서민이다. 힘이 없다. 돈이 없다. 명예도 없다. 그 곳에서 가장 아래에 실린 국민 몇몇이 실려 나간다 해도 이 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배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세월호와 무관할 수 없다. 세월호와 무관한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누군가일 것이다. 자기가 어디로 실려 가는지 알 수 없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할 수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만약 육지에 두 발 딛고 서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배를 멈춰 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배를 멈춰 한 번도 근본적으로 수리한 적 없는 그저 적재와 땜빵만이 존재했던 우리의 배를 수리해 줄 누군가 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겠지만.

 

3.

  친구야.

  대한민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을 떠난다 하여, 네가 진정 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라. 모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고 난 그저 네 선택의 결과가 행복이길 바랄 뿐이니까. 하지만 네가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진정 기울어지지 않은 땅에 두 발 딛고 서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배로, 또 다시 기울어진 배로 옮겨 타는 것인지 나는 걱정이 된다. 우리 배는,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분명 기울어졌다. 국민을 가장 아래에 싣고 끊임없이 항해하는 이 배는 기울었다. 이 기울어진 배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다른 배로 옮겨 탔을 때, 정말 온전한 배에 탈 수 있을까. 글쎄 만약 그때에도 네가 기울어진 배에 타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곳보다 더 아래칸 깊숙한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아니 너의 행복만을 본다면 그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저 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우리는 배에 타있고 이민이라는 방법으로 네가 다른 더 좋은 배에 탈 수 있거나, 육지로 갈 수 있는 거라면 묵묵히 응원할 테지만 그게 아니라면 비록 이 기울어진 배라도, 우리가 함께 있어 나쁠 건 없지 않겠니.


4.

타인의 고통을 두고 흘리는 눈물이 과연 타인에 대한 연민 에서 비롯되는지,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목격할 때면 쉽게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 눈물이 연민인지 수치심인지 알 수는 없다. 불현듯 아홉 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엄마가 울고 있을 때면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옆에서 같이 울었다. 내 기억속의 그 날 일은 조금 심각했다. 엄마는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이야기 했다. 어린 나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 때 그 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무슨 눈물이었을까. 다 큰 어른이 울고 있는 게 불쌍하다 여겨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에 흘린 눈물이었을까. 그 눈물이 연민이었다면 혹은 수치심이었다면 그 날 이후로 나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무슨 연유로 눈물을 그렇게도 쉽게 흘리는 것일까.


5.

이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르니까.

 

목요일에 만난 세월호 유가족 두 분은 동네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시는 어머님과 공단에서 일하시는 아버님이셨다. 그 분들의 소개를 듣자마자 울컥, 마음이 아프고 막막해졌다. 우리 엄마 아빠랑 저 두 분이 다를 게 무얼까. 세월호는 저 멀리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일 당장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힘이 세져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보다 빠르고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내가 힘을 키우는 사이 내 차례가 다가올지 모른다.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탈지 모른다. 그 배가 세월호일지 모른다. 사회에 대한 관심, 공동체적 삶, 이런 건 다 부차적인 이야기다. 일단 내가, 우리 가족이 살고 봐야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세월호는 내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이렇듯 이야기하고,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고 팔찌를 하고 다니며 진실을 찾으려 노력한다. 내 자리에서 눈 똑바로 뜨고 사회를 바라본다. 내 차례가 이 삶 언젠가 불쑥하고 나타나버릴지도 모르니까. 그 때가 다가오면 나는 더 이상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