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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한병철



시간의 향기

저자
한병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3-03-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오늘날 필요한 것은 다른 시간, 즉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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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받침대 없는 시간, 기준이 없는 시간. 나에 의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타의에 의해 흘러가는 시간이 그것이다. 더 이상 나에 의해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내가 살아졌다. 나는 능동적으로 사는 주체가 아니라 일정에 의해 학교에 의해 학교에 귀속된 학생일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진정으로 내가 원한 일이었는지, 그저 나는 부산스럽기 위해 바쁘게 살기 위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는지 회의감이 일었다. 그 일들을 해내며 보냈던 나의 시간들은 진정으로 나의 중력에 의해 나의 기준에 의해 흘러간 일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시간의 향기를 읽으며 작년 말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작년 말 까지 가지도 않더라도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이 일이 끝나면 저 일을 저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그리고 이 모임이 끝나면 이 모임을. 그 속에서 물론 나는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다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사색이었을까? 나는 진정한 중력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단언하지 못하겠다. 나에겐 시간의 중력이 있었노라고 나의 시간에는 향기가 있었노라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시간에게 향기가 있는 상태, 중력이 있는 상태는 아마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기준에 의해 시간이 흘러가는 그런 상황이 아닐까 생각한다.

 

2.

나는 시간의 중력을 상실한 채 살아오고 있다. 되돌아보니 나는 이제 완성되었다 느꼈던 이전이 그랬고 지금이 그렇다. 나는 아직도 나만의 기준이 부재하고 그에 따라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중력 또한 존재하지 못한다. 그 중력을 찾기 위해 그 기준을 찾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지만 사실 그 기준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자존감의 문제일까도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저 노동하고 노동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이리도 발버둥 치는 지도 모른다. 왜 이 곳에 던져졌는지도 모르는 채로 나의 중력마저 없이 사는 삶은 너무 괴롭다. 살 이유가 더 이상 없다. 이타적인 삶 따위 힘들어하는 이기적인 내가 나의 이유가 없는 나의 시간이 없는 삶을 산다는 건 당치도 못한 이야기다. 시간의 중력, 나의 기준..


3.

얼마 전 모임에서 인생그래프 라는 걸 했다. 그때 나의 인생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보는 작업이었는데, 그 중에서 나의 첫 번째 권역은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인생', '다시 주어진 인생' 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인 아홉살. 나는 겨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 후, 지금부터 나의 인생은 모두 덤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는 것. 나의 인생은 그 때 한번 끝났다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없어질 수 있었음에도 여지껏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의 인생은 덤이다. 그렇기에 나의 선택을 결정짓는 요소는 온전히 일 수 있다. 부모님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어떤 이타적인 삶도 아니다. 그저 나의 덤으로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는 것 뿐이다. 덤이기에 더 잘 재미나게 살아낼 수 있는 셈이다. 결국 나의 모든 생의 주체는 나일 수 밖에 없다



-

이 글을 썼던 3월에는 새로운 일을 해낸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문장 하나 하나에서 뭔가 불안하지만 자신감과 희망을 안고 사는 듯한 느낌이 팍팍 드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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