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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7-04-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프랑스 현대 문학의 대표적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공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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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이야기에 함께 휩쓸려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입이 잘 되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듯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다. 다시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문체’에 관한 감상을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문장 하나 하나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다만 가장 싱그러운 젊은 날을, 생애에서 가장 축복받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이따금 충격적인 시간들이 후려치곤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해 주었던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10p)”와 같은 문장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책의 중반부로 갈수록 엉켜가는 시공간에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읽고 읽다보니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그저 문장 하나하나, 단편적인 뒤라스의 기억 조각들을 마주하는 것. 이것이 뒤라스의 문체가 나에게 준 느낌이었다. 때론 생각하게 만드는 힘 보다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힘. 그래서 나의 무의식에, 내가 내 힘으로 혹은 누군가의 힘으로 억압했던 억압당했던 생각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중요하다. 뒤라스의 문체는 나에게 그런 연습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2.

  항상 슬펐던 소녀가, 바로 내 이름 같다는 그 슬픔을 떼어놓을 수 없던 소녀가(57p)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글을 쓰기 위해 산다, 라는 거창한 의도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로 소녀는 자신이 살아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글도 어쩌면 소녀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스쳐지나가는 여러 생각들을 글로 붙잡아 두지 않으면 결국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 때의 내가 사라져 버린 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일 만이 아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 다가올 일들이다. 잊지 않고 살아있기 위해 글을 쓴다.


3.

그녀는 탈출을 꿈꾼다. 도피를 꿈꾼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려보이는 것, 을 원치 않는다. 그녀는 썼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10p) 고. ‘늙는 다는 것’은 그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끔찍한 그녀의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늙는’ 것 이었다. 그래서 금박 장식의 구두를 신었고 튀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중국인 남자에게 ‘다른 여자들에게 대하듯’이 해달라고 말했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외로웠고 누구보다 곁의 누군가가 (그것이 연인이든, 가족이든 간에) 있길 바랐지만 ‘늙는 다는 것’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똑바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실 그녀는 단순히 ‘늙어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열다섯 살 반에 이미 늙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4.

소녀의 큰오빠.

어머니와 함께 소녀를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소녀는 소설 속 인물 그 누구보다도 큰오빠를 가장 사랑하는 듯 보였다. 아편과 도둑질과 가정폭력을 일삼는 그이지만 그도 순수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으리라. 그를 그토록 악의 원천으로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광기, 두 동생에 대한 어긋난 책임감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의 손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에겐 도가, 소녀에겐 중국인 남자가, 작은 오빠에겐 그의 부인이 있었듯 그에게는 그의 곁에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그의 어머니조차도 그를 가장 사랑한다고,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의 어머니조차도 그를 왜 구제할 수 없었을까. 그는 왜 “너무 늦게 죽을”(97p) 수밖에 없었을까.


5.

모두가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눈물이 나려하고 숨이 가빠오고 지나간 시간들이 떠오른다. 이게 사랑일까. 말만 들어도 고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지듯 마음의 동요가 찾아오는 거. 지나니 사랑인 것 같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것. 지나고 나서야 이제와서야 눈물을 흘리고 그리워하고 또 생각하다 지치는 후자의 것. 언제나 뒤에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어쩌면 나의 사랑이 그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6.

  박범신 선생님의 말이 딱 맞다. 사랑으로 관능과 욕망을 자유롭게, 갖고 놀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뒤바뀌면? 욕망이 사랑을 갖고 놀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욕망은 단순히 욕망일 뿐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면서도 손이 점점 느려지는 건 또 그건 아니라 생각 하나 보다. 욕망은 상처를 남긴다. 남겼다. 욕망과 사랑이 만나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럼에도 그녀의 욕망을 미워할 수 없는 건 사랑을 했던 그것이 결국 뭐가 되었든, 아무것도 남지 않았든 아니든 사랑을 했던 그의 마지막 말 때문이다.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7.

  진정으로, 까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피부가 쭈글쭈글 해지고 거울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진 지금에 와서 중국인 남자와의 그 일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말한 것처럼 그녀도 예전과 똑같이 그를 사랑하고 있고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8.

슬프다 슬퍼, 슬퍼요


9.

소녀와 남자는 사랑했느냐고, 그러면 사랑이란건 무어냐고 물었다. 잊을 수 없는 사랑이란게 있었냐고도 물었다. 모든게 후자의 것이라 해도 모든 의미는 지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해도 나는 말할것이다. 감정이었다고. 내가 느끼고싶었던 내가 느껴야만 했던 나의 감정이었다고.


사랑과 결핍과 연인에 대해 물었다. 감정의 집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것. 결국 모두 후의 일이라고. 그러면서 감정은 언제고 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 말했다.


많은 말들이 흐르고 강물을 바라다 보았다. 강물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웃기도 바닥으로 치닫기도 마음껏 내달리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하늘 위에서 나를 바라다 보고 있었다. 어쩌면 다리 위에. 어쩌면 가로등 위에 있었다. 나를 바라다 보는 나는 슬퍼졌다. 슬픔. 이라는 감정이 또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결국 슬픔일까. 슬픔은 나의 힘일까. 슬픔이라는 말에 빠져든다. 자꾸만 그 말에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싶어진다. 슬픔과 우울 그 사이에서 나는 왜 그리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걸까. 사랑이라는 말에 왜 그리도 따라붙는걸까. 지독히도 따라붙는 그 말과 그 시간이 너무도 끔찍하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 물을 따라, 흐르고 흘러 여전히 내 앞에 흐르고 있다. 끝낼 생각도 끝날 생각도 없어 보이는 너는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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