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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까뮈



이방인

저자
알베르 카뮈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1-03-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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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전혀 가감 없이 딱 이 문장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순간을 믿어요.’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 잠자리에 들어 12시간 동안 잘 수 있다고 생각하며 순간 기쁨을 느끼고(33p) 얼마 후 동료와 거리를 내달리며 오직 달리고 싶은 걷잡을 수 없는 충동만을 느낀다(43p) 이것은 과연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어느 정도의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 혹은 사이코패스라서 일까. 글쎄, 나는 그의 무감각하고 냉소적인 태도들이 왠지 모르게 이해되었다. 그는 어느 양로원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아들도 아니고, 예쁜 원피스를 즐겨 입는 마리의 남자친구도 아니고, 키가 작고 몸이 다부진 레몽의 친구도 아니고, 그저 ‘뫼르소’일 뿐인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오늘, 그 순간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하는 모든 이해를 요하지 않는 행동들을 이해했다. 공감했다. 어쩌면 나조차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 실존은 내가 선택하지 않는, 혹은 선택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본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혹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설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존이 먼저, 그 후에 본질이 온다. 모 든 인간이 자신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유하지 않는다 하여 그들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그들의 본질은 그들이 사유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자신이 본질에 대해 얼마나의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다른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뫼르소는 아마도 그 자신의 본질보다는, 실존에 집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그것이 그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그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파리행을 권유했을 때 드러난다. 그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모든 삶이 어쨌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따라서 여기서의 삶도 내게는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63p) 정리하자면 인간은 실존과 본질 모두를 갖고 태어나고 그의 본질은 그가 사유함에 따라 혹은 사유하지 않음에 따라 정해진다. 정해지지 않음도 정해지는 것이다. 

  최근 시작한 철학소모임에서 희랍철학을 공부하면서 한 학우가 그런 말을 했다. 희랍시대의 철학이란, 아니 그 이후에도 그 자신의 논리 세계 안에서 그것이 맞는다면 맞는 것이라고. 그래서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정자설, 같은 것도 그의 논리체계 속에 적절히 자리 잡고 있으므로 우리는 2500년전 그 이야기들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오래 전 부터 유명한 철학자들이 고뇌했던 실존주의를 짧은 글로 판단하고 이야기하려니 무언가 죄책감이 느껴져 덧붙이는 말이었다.


3. 처음부터 말했듯 뫼르소는 순간을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 아랍인의 존재는 그 순간 빛나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검을 지닌 무언가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과 똑같은 태양을 보았다. 그날처럼 그는 머리가 아팠고 한 발짝 자리를 옮김으로써 태양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태양을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그 태양은 아랍인의 검을 비추었다. ‘반짝.’ 그 뜨거운 검은 뫼르소의 고통에 사로잡힌 눈을 후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마치 하늘이 통째로 열리면서 비오듯 불을 내리붓는 것 같았다. 나의 존재 전체가 송두리째 팽팽하게 긴장했다.(87p)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마리와의 관계에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순간을 그 때 느낀 것이다. 순간을 사는 뫼르소에게 그것은 모든 선택에서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흔들리게 만드는 그 어떤 것. 그것이 비록 재판장이 보기에, 검사가 보기에 터무니없는 이유라 할지라도 말이다. 결국 그가 아랍인을 죽인 건 ‘태양’. 그 반짝임, 머리아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

- 사형제도 존속 여부 : 폐지하여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법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형제도 폐지 관련 토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필요악’이다. 법으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악’이지만 그것은 사회에 분명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사형제도는 필요악으로써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든다. 오히려 사형제도로 잠재적 범죄자들을 묶어두는 대신, 잠재적 범죄자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의 필요성을 더 느껴야 하는 건 아닐까.


- 성범죄자 신상공개 : 최근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처음 시신이 발견되고 용의자를 수색하던 며칠 뒤 용의자의 신상이 공개되었는데 그때마다 기사를 보고 깜짝 깜짝 놀랐다. 그들의 이름, 나이는 물론 얼굴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질이 나쁘다고 말하는 성범죄자의 경우, 집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성범죄자의 정보가 우편으로 배달될 정도로 그 신상정보를 알기 쉽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바뀌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정보들이 진정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된 것 조차 이미 그들은 범죄를 저지른 후인데, 우리가 정보를 알고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국민의 알 권리, 등을 제공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방법이 이렇게 직접적이어야 할까는 의문이 든다. 그 방법이 법이라 하더라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완곡하게 우리를 보호할 수는 없을까.


- 흡연 법적 규제 : 1월 1일,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들렀다. 원래 1층 테라스 쪽 실내석은 흡연실이라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올해부터 법이 바뀌어 금연석으로 바뀐 것 같았다. 그래서 직원에게 ‘여기 이제 흡연실 아니에요?’라고 한번 더 물었더니, ‘네, 흡연은 밖에 나가서 하시면 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많은 흡연자들이 카페에 들어와 그 질문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생각된다. 평소 흡연은 그저 개인의 선택일 뿐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되었기에 흡연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크게 찬성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근 40년간 담배를 피워오신 우리 아빠가 이번 담뱃값 인상 및 여러 흡연에 대한 규제로 담배를 끊으시는 걸 보니,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그들의 의도가 조금은 들어먹은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