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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의 방문 / 노영수



기업가의 방문

저자
노영수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 2014-03-1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학과의 교수와 학생들, 무한 경쟁을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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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요즘 사춘기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 사춘기는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뜻을 갖고있다고 그러니 너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는 건 또 다른 봄이 찾아왔다는 것이라고. 모르겠다. 새로운 봄이 나에게 찾아오려 요즘 이토록 불안하고 우울한 걸까. 연신 얼굴을 찡그리며 <기업가의 방문>을 단숨에 읽었다. 책을 덮고 난 뒤 내가 요즘 느끼는 우울감이 어쩌면 사회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결국 나는 세상과 타협해버리고 말 것 같다는 회의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속한 대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부터 출발한 회의감이었다.

  나는 이제 한 번 더 말하면 과장해서 만 번은 말했을 것 같지만 어쨌든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교에 들어왔다. 좋게 말하면 다른 수험생들보다는 꿈을 좇아 대학교에 진학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공부보다는 말빨로 나를 팔아 대학에 합격했다. (표현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으나 대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과 선배로부터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컴퓨터를 잘하지도 않았던 내가 컴퓨터공학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컴퓨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줄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예술적인 가치였고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었다. 기술로 예술을 하는 테크놀로지 아티스트. 그게 바로 나의 꿈이었다. 그 꿈을 생각하며 대학에서 내 꿈을 이루는 한 발걸음을 내딛게 될거라는 생각에 잠 못 들던 밤들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의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컴퓨터공학과 특성 상 남학우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학교에 들어오면 하게 되는 이야기가 모두 ‘연애’(사랑은 아니었다)아니면 ‘이성’ 아니면 ‘미팅’ 이라는 사실에 처음엔 적잖이 실망했다. 여중-여고를 나온 터라 이성에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나름 순애보 스타일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기에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었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동기, 선-후배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는 과제나 간단한 컴퓨터 관련 질문 정도가 끝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컴퓨터공학은 없었다.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원하는 공부가 있다면 오직 독학뿐이었다. 교수님들은 불친절했고 군입대를 앞둔 혹은 복학생 선배들은 매일 전화해서 술을 먹자고만 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들을 컴퓨터로서 그려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컴퓨터는 생각보다 멍청한 수단이었고 나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1학년 2학기부터는 중앙동아리의 회장을 맡게 되면서 컴퓨터 공부와는 더 멀어졌다. 

  벌써 계절이 여러 번 변하고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매일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지만 요즘은 생각하기에도 내가 지친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처음 내가 생각한 컴퓨터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다른 학문을 배워야하는걸까 사실 컴퓨터라는 것은 무엇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효율적으로 처리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발생한 문제는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건 나의 대학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한다.


2. 우리 사회는 대학생들에게 우리가 바라지 않았던 ‘권리’를 쥐어 준 채 그것이 너희만을 위한 ‘특권’이라 말하고 우리 몰래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국가 장학금 이라는 특권, 학자금 대출이라는 족쇄. 교수들의 수업이라는 특권 상대평가 학점제도라는 족쇄. 대기업 서포터즈라는 이름의 특권, 그 이름으로 많은 아이디어와 노동력을 가져가는 족쇄. 이미 우리는 족쇄라고 느끼지도 않는 이 많은 것들이 대학생이라는 이름 앞에 달려있는 것들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이미 내 학자금 대출 상황은 천만원대에 진입했고 아직 남아있는 절반의 대학생활 동안 내 대출 이력은 한 줄 한 줄 추가될 것이다. 지급신청 버튼을 클릭하고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400만원 이라는 돈이 바로 학교 통장으로 들어가는 이러한 신기한 현상은 대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일까 족쇄일까. 엄청난 모순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서 얻은 특권이라면 그 대가가 나의 발목을 잡더라도 당당할텐데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아니 내가 원하는지도 모르는 특권이라면 이 특권을 나는 어찌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이 특권을 잡아야 할까 놓쳐야 할까.


3. 무엇이, 우리가 부서짐을 감수하고, 감내하게 한다 생각합니까? 우리의 혁명은 어떠한 정언명령에 따라 인도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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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부서짐을 감수하고 감내할 만한 어떤 것이 남아 있는가. 되물어본다. 우리 모두가 어떤 것을 이룩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는 걸까. 사실 요즘은 사는데 회의를 많이 느끼곤 한다. 내가 마지막까지 담고 갈 그 하나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알고 있지 못하는 지금 내가 어떤 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것에 나의 생을 걸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 어느 때 보다 더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던 중 노영수의 이야기를 읽었다. 무엇을 위해 그는 그렇게도 열심히 그리고 또 단단하게 싸워야 했는가. 그의 이야기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그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사실 그 이유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를 갖게 되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가기 전날 고민하던 그의 모습은 그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였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내 얼굴은 더욱 더 찡그려졌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고민해왔는가. 왜 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하였고 내가 변화시킨 사회로 이루고 싶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 이루고 싶은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나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가장 근본이고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 그것이 내가 그렇게도 말하고 다녔던 인본주의에 대한 부정이 아니었을까. 이야기하다보니 나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귀결될 것만 같다. 다시 돌아가 보자. 그래도 나는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짊어진 것처럼 내가 아니면 세상의 어느 것이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이야기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하면서 세상의 작은 것 하나는 변화시켜야 내 삶을 잘 살아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그런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존재하기는 한 것 일까 이젠 모르겠다. 이 짧은 글을 쓰며 모르겠다는 말만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확신이 없는 내 마음이 확신이 없는 내 생각이 나는 혐오스러워지기까지 한다. 확신을 갖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평생을 지나며 나는 결국 그냥 그랬던 한 인간으로 어느 것도 바꾸지 못한 채 어느 것도 나아지게 하지 못한 채 인생을 끝내버리는 건 아닐까.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방식들은 실은 내 자만과 자아도취에 빠져 말해왔던 건 아닐까 의문이 든다. 내가 어떤 것을 위해 부서질 수 있을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내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진심 하나도 전달하지 못하는 내가 무슨 표현을 하고 또 그 표현을 다른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일까. 그것을 찾아나가야 겠다. 조금 더 고민해야겠다. 결국 그 결론이 나에 대한 부정이 되지 않도록 그 바닥까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닥까지 부딪히고 또 부딪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