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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이승우



지상의 노래

저자
이승우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8-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가 한국 소설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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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연은 그런 그의 모습이 낯설고 못마땅했지만 장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지 어떤지는 그 말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렇든 아무렇지 않든 그는 오랫동안 그 표정만 짓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얼굴이 아무렇지 않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지은 표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아도 짓는 표정이지만 아무렇지 않지 않아도 지을 수 밖에 없는 표정이었다. (p.129)

그들은 세상을 버리고 떠나왔지만 세상은 그들을 잊지 않고 찾아와서 과거의 시간을 불러냈다.(p.140)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의 선택이 달라졌을까?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달라졌을 수도 있고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처럼 망설임 없이 대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단호하게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마음이 편치 않았을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단호함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 사실을 모르는 편이 나았다. (p.234)

그리고 그가 그 점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면, 실망도 낙담도 하지 않는 이런 느긋함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평생을 들여서 해야하는 일을 한순간에 해치워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평생을 들여서 해야할 일을 한 순간에 해치워 버린 후에 남는 생의 공허를 어쩔 것인가.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해야한다.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삶 때문이다. 일을 위해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남과 동시에 삶이 끝나기도 한다. 일을 끝냈으므로 삶을 끝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삶을 끝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일을 끝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아니다. 과제를 해치운 다음의 공허를 피하기 위해 그가 일부러 과제를 소홀히 하거나 미루거나 회피했다는 뜻은 아니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간절했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속성으로 마침표를 찍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선명하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살기 위해 그 일을 필요로했다. 살기 위해 그 일이 그에게 있어야 했다. 그 일이 없으면 그의 삶이 위험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역시 선명하게 의식하지 못했고. 그 편이 훨씬 나았지만 그의 삶을 위해 그 일은 한없이 연장되어야 했다. (p.245)



언젠가부터 책을 읽다가 마음에 박히는 구절이 생기면 빈 종이에 마구 휘갈겨쓰는 습관이 생겼다. (이 책부터 유독 도드라졌던 것 같다.)

밑줄을 긋거나 그 페이지를 접어두거나 하는 것보다

마구 휘갈겨 놓는것이 더 그 말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불어넣는데 도움이 된다.

지상의 노래를 읽으면서도 노트 구석구석에 많은 글들을 휘갈겨 놓았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끝없이 이어지는 소설 속 문장에 한껏 매료된 것 같았다.

소설가 이승우님은 이런 말씀을 했다.


"문장 하나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글을 써나갈 때, 새가 둥지를 만드는 것을 연상하며 써내려간다. 

불완전한 조각 하나 하나."


나는 어쩌면 불완전한 문장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읽고 또 그것을 따라 쓰는데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나 또한 나의 문장 하나 하나를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여

그 하나를 잇고, 또 잇고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부족한 이어나가기가 멋지게 실현된 모습이 이승우님의 문체였기 때문아니었을까


글을 더 읽고

글을 더 따라 쓰고

나의 글을 더 써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