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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죽도록 즐기기 /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국내도서
저자 :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앤드류 포스트먼(Andrew Postman) / 홍윤선역
출판 : 굿인포메이션 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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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닐 포스트먼의 죽도록 즐기기는 '미디어'. 우리나라말로 하면 '매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인쇄매체와 영상매체에 대해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매체의 홍수 시대 속에서 나는 무슨 매체를 선호하는가 생각해본다. 나는 ’글‘보다는 ’말‘에 가까이 살아왔고 선호해왔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수많은 수정작업을 거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다르다. 일단 생각이 끝나고 한번 입을 떼게 되면 주워 담을 수도 취소할 수도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나는 왜 말이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고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왔을까. 내가 살아온 시간들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말‘의 속성은 많이도 닮아있다. 즉흥을 좋아하고 어딘가에 남겨지는(기록되는) 것보다 그 순간의 나를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내 모습이 ’말‘과 닮았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활자에 가까워지고자 매번 노력해왔다. 나에게 활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뭔지 모를 신뢰의 아우라를 풍기는 존재이다. 글을 읽다보면 (그 글이 인터넷 기사이든, 누군가가 SNS에 남긴 토막글이든, 468페이지짜리 책이든 간에) 어느 샌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 그렇구나. ‘ 라는 말을 하고 있다. 활자매체가 나에게 신뢰감을 주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그곳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활자매체는 영원성을 갖고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신뢰감을 준다.


2.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평소에 나는 논리적․이성적/파편적․감성적인 인간형 중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닐 포스트먼은 매체는 그 자체로 메타포라고 주장하는데, 이 논리를 개인에게 펼친다면 내가 선호하는 매체가 개별적 인간형을 형성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선호하는 매체가 본인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얼마나 미쳤는지와 그 이유는? 혹은 아니라면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성적이길 원하는 감성적인 인간형. 매번 두 인간형 사이에서 고민하고 두 인간형의 모습을 모두 갖기 위해 노력한다. 선호하는 매체가 나의 인간형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는 예라고 답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 ‘말’의 속성과 나는 매우 닮아있고 나에게 ‘글’은 이성적이길 원하는 욕구를 분출해내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통해 나의 이성적인 모습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3.

텔레비전의 방송물이나 하이퍼텍스트가 갖는 최고의 장점은 아주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단시간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수많은 사람들이 얕고 넓은 정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다들 워터파크에 있는 파도풀에 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안전요원들이 사람들을 앞쪽 깊은 물 로 이동하도록 지도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처음 워터파크에 놀러갔던 중학생 때 나는 안전요원의 말을 무시하고 얕은 물에 서 있었다. 그 때 큰 파도가 밀려왔고 나는 360도 회전에 온갖 물을 다 먹고 귀가 멍멍해졌다.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만약 내가 안전요원의 말에 따라 가장 앞쪽 깊은 물에 있었다면 아무리 큰 파도더라도 그 파도 위를 넘실대며 물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정보의 바다도 워터파크 파도풀 같은 건 아닐까. 얕은 정보 속에 놓여있으면 앞뒤로 양옆으로 이동하기는 편하겠지만 파도가 닥쳤을 때 어찌할 줄 모르고 그 파도에 덮쳐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깊은 정보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큰 파도가 오더라도 그 위를 즐기며 넘실댈 수 있지 않을까.

  또 이런 말도 있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

깊이 파려면 일단 넓게 파야 한다는 것. 처음부터 깊게 파면 파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넓게 파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깊게 파야 되는지를 자기가 알게 된다는 것. 평소 동경하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했던 말이다. 즉 우리에게 놓여진 하이퍼텍스트들을 넓게 즐기되 그것이 얕은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깊게 가기위한 길목이라고 생각한다면 집단지성도 집중도 이해도 모두 이룰 수 있지 않을까.


4.

저자는 오웰의 예견은 틀렸고 헉슬리의 예견은 옳다고 말한다. 나는 오웰적 예견에 동의하는가 헉슬리의 예견에 동의하는가. 헉슬리의 예견에 더 가까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변에 정보가 너무도 많지만 그 정보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고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로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섣부르고. 헉슬리의 예견이 더욱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오웰이 생각한 미래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자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할 여지조차 주지 않지만, 헉슬리가 생각한 미래에서 우리는 -그리고 지금은- 보이는 것이 너무나 무궁무진하지만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혼란을 겪고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주변에 어떤 오웰적 요소가 있을까. 학교 어딜 둘러보나 빅브라더의 얼굴처럼 나를 보고 있는 CCTV들.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그람 헉슬리적요소는? 누구나 이메일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는 페이스북.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고 나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페이스북에 글 하나 올릴 때 1시간은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나 스스로 나를 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오웰의 미래와 헉슬리의 미래 둘다 너무나 끔찍하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막기우해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정말 막을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를 막고자 노력하는 것이 나의 꿈이자 목표이기도하다. 일단 우리는 경계심이 필요하다. 정보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경계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대안적인 요소들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아질 사회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의심해야한다. 쉽게 얻어지는 것일수록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돈도 명예도 정보도 마찬가지.


5.

에세이 쓰면서 에피톤프로젝트 신보 <각자의 밤>을 들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매체는 ‘음악’은 아닐까. 왜 많은 매체에 관한 이야기 중에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빠져있을까. 똘레랑스에서의 첫 책<죽도록 즐기기>와 이 시간들은 에피톤프로젝트의 각자의 밤으로 기억될 것같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을 매체또한 음악이라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