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라 달력사업 5.18 세미나 <철학의 헌정>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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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아홉시, 오늘은 오랜만에 지각을 하지 않았다. 창가 근처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교수는 오늘도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수업이 한 시간 십 오분 짜린데, 그 중에 이삼십분은 딴소리. 가끔은 너무하단 생각이 든다. 보통 딴 소리의 주제는 야구(지식 자랑), 미국 유학시절 이야기(자랑), 졸업한 선배들(자랑) 등등 다양한 듯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는 것들이다. 오늘의 주제는 ‘이문열’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라며, 학생들에게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한다. 앞자리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다. 나는 이문열을 잘 몰랐지만 왠지 손을 들어야할 것 같아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맨 앞에 앉은 남학생에게 무슨 책을 읽어보았냐, 묻고 학생은 모두가 아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답한다. 교수는 그 답에 대해 모두가 교과서에서 읽은 것이 아니냐는 작은 면박을 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이문열의 책들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 책 내용을 말하다가, 이문열은 민중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곤 자신도 그와 비슷한 생각이라는 말을 작게 하곤 다시 수업으로 돌아온다. 나는 왜 그 때 벙 찐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교수는 평소에도 자신은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둥, 소위 금수저라는 둥의 발언을 해왔다. 그가 민중을 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분석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서 일까. 아버지가 철학 교수이고, 자신은 명문대를 나와 어려움 없이 대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고 수업을 열심히 하며 지냈기에 자신과 민중의 삶은 거리가 멀다 느껴서 일까. 거리가 멀다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교수는 ‘장님은 분홍색을 알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장님에 대해서, 선천적 시각장애인에 대한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해서? 본인과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러 질문들이 샘솟았다. 직접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던 나였지만, 지금 떠오른 이 질문들을 교수에게 직접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 질문이 ‘옳은 질문인가.’ 라는 검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내가 이 질문을 직접 했을 때 교수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와의 관계가 불편해지지는 않을까. 철학과 학과장인 교수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만, 나의 대학생활도 불편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결론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철학의 헌정 제 4장, 계시로서의 역사와 제 5장, 국가와 폭력을 읽으며 지난날의 불편한 물음들이 떠올랐다. 교수가 말하는 ‘민중’은 5.18‘민중’항쟁의 그 민중과 같은 것이었을까? 같았다면 그 교수에게 나는 다시 어떤 물음을 던질 수 있을까. 다르다면, 그가 정의하는 민중은 무엇이었을까. 5.18에 대한 김상봉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내가 생각하는 ‘민중’과 민중과 ‘나’에 대해 생각했다. 김상봉은 끊임없이 민중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힘에 대해 ‘하늘나라의 계시’라며 새로운 나라가 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초석이었다고 말한다. 시민군들이 행한 폭력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민중의 힘, 완전한 공동체라고 한다. 진정한 자유가 발현된 폭력이야 말로 국가의 기초가 되는 주권폭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공동체를 분명히 꿈꿔왔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에 응답하여 나서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나서는 그런 공동체를, 그런 사회를 꿈꿔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사회는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다고 한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모두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 국가에서 ‘너’도 ‘나’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냐 있겠냐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꿈꾸는 것이다. 꿈이 현실과 같다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땅바닥에 붙어 하늘만 바라보는 현실로 내려오는 것이다. 하늘로 떠오르려면 바라만 봐서는 안 된다. 움직여야하고 올라가야하고 다시 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공동체를 꿈꾼다. 그리고 나는 그 공동체를 꿈꾸는 민중 속의 하나이며, 나라는 하나의 민중이다.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내 배역이 ‘지나가는 행인3’이 되는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행인3’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도 내가 되고 싶어하는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저 ‘지나가는 행인3’이 되더라도, 이름 없는 내가 결국 참된 만남으로 간 것이라면, 그 공동체로 향해 가는 길이었다면 그걸로 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나를 다그치고 괴롭혔던 이유는, 나 하나의 ‘이름’으로 남고 싶어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이 생각이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떤 물음과 괴로움으로 나를 찾아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2016년 5월의 마지막에는 이름 없는 ‘나’들로부터 힘을 받는다. 진심으로.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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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자기희생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오히려 지극한 자아의식과 긍지의 발로’
5.18민중항쟁은 ‘인간존재의 완전성이 만남에 앞서 실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만남 속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계시’
‘5.18민중항쟁 속에서 우리가 인간존재의 어떤 완전성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특별히 고상한 인격을 소유한 개인의 완전성이 아니다. 거꾸로 광주는 어떻게 이름 없는 사람들이 만남 속에서 고귀해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눈부신 계기’
‘오직 국가의 폭력이 시민적 자유의 표현과 실현일 수 있을 때 그것은 주권적일 수 있다’
‘시민이 자유로운 폭력의 주체일 때 그것이 시민적 폭력이 된다. 국가주권의 기초가 시민이라면, 국가의 기초가 되는 주권폭력의 주체도 시민이어야 한다’
‘5.18시민군이 총을 든 것은 계엄군의 폭력에 고통 받는 시민들의 총을 들라는 부름에 응답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 속에서 자유는 일어나고, 그렇게 자유로운 폭력이야말로 주권폭력이니, 5.18 시민군의 무장 항쟁은 주권폭력의 진리를 가장 순수하게 계시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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