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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계속해보겠습니다 / 황정은

(1) 소라나나나기

 

당신의 이름 세 글자는 무슨 뜻을 갖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의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요, 혹은 그렇지 않나요? 이름 때문에 괴로웠거나 즐거웠던 적이 있나요? 당신의 이름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있었다면, 바꾸고 싶은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의 이름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내 이름은 김민석입니다. 소라나나나기처럼 한자로 분석하면, 하늘 민에 주석 석. 엄마의 주장에 따르면 하늘의 보석이랍니다. 주석이 보석인지 보석과 주석은 다른 건지 보석 석은 없었는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지만 이제는 그냥 하늘의 주석이든 하늘의 보석이든 똑같은 광물이고 우리 엄마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해서 엄마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두 가지, 하늘과 보석을 합쳐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사실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를 처음 만나, 내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열이면 아홉이 “남자이름이네~”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이름은 남자 이름입니다. 언제부터 남자 이름, 여자 이름 이런 것이 나뉘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내 이름은 남자 이름입니다. 나는 그냥 김민석이고, 여자인데 사람들은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라고 나를 부릅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로 사는 것은 사실 딱히 불리한 것도 유리한 것도 없어보이지만, 이름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 차이가 큽니다. 저는 이름에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남자, 여자 라는 문제에도 아주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남자이름을 가진 여자로 살아온 이십 삼년 동안 크고 작은 힘들고 괴로운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 그저 사람들에게 너를 더 각인시킬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들 많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수 천번도 넘게 들어온 “남자이름이네?”라는 말은, 나의 성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는 질문과도 같이 들렸습니다. 친한 여자 친구들에게도, 민석이가 남자였음 좋겠다 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정한 남자친구처럼 친구들을 자주 대했기 때문이었겠죠. 예쁘다라는 말을 남자처럼 다정하고 무심하게 한다든가 하는 그런 말들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아니 나는 정말 남자인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 모든 생각들은 모두 제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건 저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남자이름이네?”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름은 단순히 부모님이 지어주신 어떤 것일 뿐 아니라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고 궁금해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은 계절학기를 듣고 있습니다. 공학 수학 및 연습1 이라는 수업인데, 듣고 싶어 듣는 건 아니고 안 들으면 졸업을 못한다길래 억지로 듣고 있는 중입니다. 과목명에서 느껴지듯 공대생들이 꼭 들어야 하는 필수 수업입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공대에는 남자가 훨씬 많습니다.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좀 더 파다보면 왜 공대 쪽으로 남자가 훨씬 몰리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까요? 물리적 성별의 구분만으로는 사회적인 어떤 능력이나 재능도 구분할 수 없다고 믿으니까요. 어쨌거나, 지금 2016년 여름 계절학기 건국대학교 공대 B동 566호에는 남자가 90%를 차지합니다. 100여명이 넘는 학생 중에 여학생이 10명이 될까 말까. 첫날에는 출석을 불렀습니다. 교수님이 김민석- 하고 불렀고 저는 구석에서 손을 들며,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기계과 김민석, 컴공과 김민석, 화공과 김민석을 나눠 부르셨습니다. 한 반에 김민석이 세 명이라니. 오늘도 저는 제 이름이 ‘남자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니까 나는 내 이름에 관해서라면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름에 그렇게 많이 애착을 갖고 집착을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닌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는 거겠죠. 어찌됐든 나는 김민석입니다.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죽을 때까지 헷갈려할 여자. 아님 더 이상 헷갈리지 않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여자. 아니 그 전에 사람. 여자이기 전에 사람. 남자이름을 가진 여자이기 전에, 김민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그냥 인간. 김재훈 고현애씨의 자식. 


  

 

(2) 모세씨가 소라 나나 혹은 나기에게

우리가 직접 듣지 못한 모세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모세씨의 입장에서 소라 나나 나기 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지, 적어주세요. 꼭 모세씨의 입장에서 쓰는 편지 형식이 아니어도 되고, 모세씨는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와 같은 형태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어쩜 모두 약하고 비슷한 소라나나나기에게 모세씨는 너무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는지 모르죠. 이런 모세씨의 입장을 우리도 함께 생각해보자구요.

 

나나씨, 오랜만입니다. 모세입니다. 당신은 잘 지내나요, 아이는 잘 크고 있나요. 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 지금도 당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요. 만약 내가 당신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당신에게 돌아가야 할 겁니다. 당신이 나를 받아줄진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나는 다음 주에 다른 사람과 결혼합니다. 아마 나는 아직까지도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그 때 나는 소라, 나나, 나기, 애자, 라고 당신이 부르는 그 사람들이 모두 이상해보이기만 했습니다. 내가 너무 어렸던 걸까요. 겪어온 삶이 너무도 달라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요. 나나씨가 만약 나에게 내가 겪지 못한 그 삶의 그늘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더라면, 지금 우리는 함께 우리의 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나나씨도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나 같이, 힘든 일 없이 사회에 딱 맞는 부모님과 그 가정에서 살아온 사람이 나나씨와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요. 나나씨가 그 때 나에게 아무리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려 해봤자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에게 내 요강을 치우라고 말했을지도 모르지요. 나나씨와 소라씨, 나기씨, 애자 어머님이 나보다 훨씬 더  이 삶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지요. 나나씨, 계속해서 잘 살아주세요. 아이도 깊고 넓은 삶의 모습을 보며 잘 살아가도록 해주세요. 내가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었던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아빠가 되었다고 말해주세요. 비록 내가 지금은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나씨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편지할 수 있을까요. 10년은 더 흘러야 나는 나나씨 인생의 속도를 맞춰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나나씨에게 아픔을 주지 않을 말을, 나나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될 그 날에 또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그럼 건강히.

 

 

(3) 애자가 소라와 나나에게

 

3번과 비슷한 질문입니다. 이번엔 애자입니다. 애자는, 금주씨가 죽은 그 날 이후 사람이었을까요? 애자는 소라와 나나에게 정말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애자에 대해 애자가 소라와 나나에게 무슨 말을 자꾸만 하려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주세요.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애자는 진짜 그런 사람이었을까. 사랑이 없으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애자는 진짜 그런 사람이었을까. 소라와 나나는 애자에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었을까. 오직 금주씨만이 애자의 사랑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애자씨에게 사랑은 옮겨갈 수 없는 존재였을까. 한 번 뿌리박은 그 곳에 멈춰서 있어야만 했을까. 아마 그랬겠지. 그랬기에 애자는 (나의 사랑의 대상인, 금주씨 없는 세상은)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이라고 했겠지. 

 

 

(4) 계속해보겠습니다

 

나나가 나기에게 토해내는 물음들(182)을 읽으며, 나나의 손을 꼭 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나에게 괜찮다고, 하찮은 위로는 건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세계라는 것을 살아가는 건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나나는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받을 사회적 데미지, 혹은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는 우리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계속해보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의지의 표현이나 희망찬 다짐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약하디 약한 존재가 삶을 견뎌내는 마지노선일까요? 나나의 터져나오는 물음들, 나나가 반복해서 말하는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에 대해 여러분이 느낀 것을 적어주세요. 그리고 나나가 던지는 물음들에도 답해주세요.

 

나나의 물음들은 마음을 콕콕 찔렀다. 심지어는 그런 생각도 했다. 이 물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내가 진짜 대화랄 것을 할 수 있을까? 나나의 이 물음은 내가 가진 물음과도 같았으므로. 나나의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말은 희망찬 다짐의 문구가 아니다. 그저 이 삶을 견뎌내야 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이다. 그래서 더 마음을 찔렀다. 그래서 나도 계속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녀 자신에게는 마지막이었지만, 나에게는 처음이 되었다. 계속해야지, 계속해보아야지 라는 되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