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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국내도서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 / 이미애역
출판 : 민음사 200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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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남성의 심리

 

오히려 여성은 냉대 받고 얻어맞으며 설교와 훈계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런 사실에 항의하고 저런 사실에 논박할 필요성 때문에 지나치게 긴장되었고 생명력은 위축되었을 겁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여성운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아주 흥미롭고도 불명료한 남성의 복합적인 심리에 근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성이 열등하기보다 남성이 우월하기를 바라는 뿌리 깊은 욕망으로서, 남성을 예술의 전면뿐 아니라 도처에 서 있게 함으로써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합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위험부담이 극히 적고, 청원자가 겸손하며 헌신적일 때라도 그렇지요.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85pg

 

 

(라) 양성적

 

남성의 두뇌에서는 남성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보다 우세하고, 여성의 두뇌에서는 여성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보다 우세합니다. 그 두 가지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정신적으로 협력 할 때 우리는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남성이라 하더라도 자기 두뇌의 여성적인 부분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성 또한 자기 내면의 남성적인 부분과 교섭을 가져야 하지요. 콜리지가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의 의미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융화가 일어날 때라야 마음은 온전히 풍부해지고 제 기능을 모두 사용하게 됩니다. 아마도 순전히 남성적인 마음은 순전히 여성적인 마음과 마찬가지로 창조력을 잃을 것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148-149pg

 

 

 

Q1: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을 통해서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위 제시문 A (나) 또는 책에서 서술된 방식(형식)으로 제시문 B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해당하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작성하세요. 

 

(다) 남성의 심리 / (라) 양성적

여성이 자신보다 우월하기를 두려워하는 남성의 심리. 또 그 심리와 나 자신 속에서 갈등하는 나의 양성적 내면에 대해 썼습니다.

 

  꿈을 꾸었다. 

 

  그 남자가 망치를 들고 나를 쫓아오는 꿈이다. 나는 어느 방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나를 죽이겠다고 한다. 그는 정말 곧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눈빛을 드러낸다. 나는 두려워진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귀에 나의 외침은 소음일 뿐이다. 그가 나를 왜 그리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살려주어서일까. 내가 ‘나대고 다녀서’ 일까. 그 만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곳에서 내가 ‘설치고 떠들었기’ 때문일까. 모른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다. 이 생각도 그 밖의 나로부터 발생하는 생각이다. 도망친다. 슬그머니, 그가 잠시 다른 곳을 보는 틈을 타 슬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건물 앞 응급차에 숨어든다. 옆의 누군가도 침대에 누워있다. 그 옆에 슬그머니 눕는다. 그는 아직 모른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른다. 나는 살 수 있다. 나는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드디어 살았다. 응급차가 출발한다. 몰래 누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때 그가 나타난다. 망치를 들고 나를 찾는다. 분노에 찬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더 이상 그 모습은 희화화되지 않는다. 나에게 그의 분노는 엄청난 두려움이다. 그는 그 자신의 분노에 못 이겨 망치를 부신다. 망치로 무언가를 부시는 것이 아니라 망치 자체를 부신다. 나무 막대기만 남는다. 그는 응급차를 발견한다. 그 속의 나도 발견한다. 오토바이를 탄다. 그 분노의 속도로 응급차를 뒤쫓는다. 나는 다시 두려워진다. 그의 오토바이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간다. 나의 희망에게서 멀어져간다. 결국 그는 나를 따라 오지 못한다.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장면이 바뀐다. 그와 내가 또 다시 한 방에 있다. 그는 이제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저 그 표정으로, 그 만의 그 표정으로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할 뿐이다. 꿈에서 깨어난다. 한 순간이다. 나는 여기에도 그리고 저기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꿈에서도 여성과 남성 속에서도. 이 사회 어디에서도. 여전히 그랬다. 모든 곳에 발만 담구고 있는 꼴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그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남자의 플레이에 감탄한다. 그 남자의 농담에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 남자를 혐오한다. 그 남자로부터 쫓기는 꿈을 꾼다. 여전히 나는 이 곳에도 저 곳에도 속해있지 못한다. 나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 남자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계속해서 생각한다. 생이 끝나도 나는 이 곳에도 저 곳에도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끝날때까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억압에서 오는 불편함과 그를 이기지 못하는 나 자신, 이를 해명할 수도 없는 나 자신을 지켜만 보아야 한다는 사실. 그 사실이 어쩌면 가장 괴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을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래서 발버둥 치며 발을 빼지 않는. 그 상태가 주는 괴로움이 망치를 든 남자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망치를 든 그와 응급차를 탄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인가. 망치를 든 그 남자는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여성이면 여성의 역할을 하라고. 나대지 말고. 설치고 떠들지 말고. 그가 만들어낸 여성 속에 나를 가두고 죽이려 한다. 그 모습이 아닌 나는 그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이 아닌 여성은 살 필요가 없다고. 그런데 그 질문은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너는 도대체 어디에 몸을 적실 것이냐고. 발만 담구고 있는 게 아니라 온몸을, 언제 도대체 적실 수 있냐고 묻는다. 남성도 아닌 여성도 아닌 내가, ‘나’로서 어디에 몸을 적셔야 하는지 알리 만무하다. 다시 망치 든 그 남자를 불러낸다. 그런 삶은 살 필요가 없다고. 그냥 죽으라고. 네가 살아야할 이유가 도대체 무어냐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도 나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꿈은, 나의 생이라는 꿈은 불시에 끝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