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빨려들어간 영혜의 세계.
신연식 감독의 조류인간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서사다.
인간이 인간임을 거부하는 서사.
다른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서사.
영혜의 여윈 얼굴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듯, 아무도 없는 병실을 살피며 영혜는 말했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정말 나무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식물이 어떻게 말을 하니. 어떻게 생각을 해.
영혜는 눈을 빛냈다. 불가사의한 미소가 영혜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언니 말이 맞아........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영혜는 큭큭, 웃음을 터뜨리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금방이야. 조금만 기다려 언니.
왜, 죽으면 안되는거야.
그 질문에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옳았을까. 그걸 대체 말이라고 하느냐고, 온힘을 다해 화라도 냈어야 했을까.
오래전 그녀는 영혜와 함게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홉살이었던 영혜는 말했다. 우리, 그냥 돌아가지 말자.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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