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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지중해 철학기행 - 에페소스 | 헬레니즘 시대의 학문과 근대 / 클라우스 헬트

최근 친구들과 작게 철학모임을 하나 시작했다. 첫 모임을 하기 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정해오기로 했는데 난 뭘 정할까 고민만 하다가 책은 정하지 못하고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만 결정했다. 내가 관심있는 주제는 언제, 그리고 왜, 어떻게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로 군림하기 시작했는가이다. 근대성이다. 왜 인간은 다른 존재의 위치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모든 것의 꼭대기에 두는가. 그것은 어떻게해서 당연해졌는가. 인간을 위해서라면 다른 존재의 희생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은 근대의 모든 단점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채로 있다. 현대로 넘어와 모든것을 해체하고 다시 돌아볼 정도로 우리는 반성된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근대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모임에서는, 모인 친구 중 한 명이 비트겐슈타인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읽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하였기에 일단 비트겐슈타인을 읽기로 하였다. 나는 비트겐 슈타인의 철학에서도 내가 궁금해하는 근대성에 대해 탐구해볼 것이다. 아래 메모는 <지중해 철학기행>을 추천받아 읽던 중, 근대성에 대해 내가 고민한 내용에 대한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이야기이다. 

 

<에페소스 | 헬레니즘 시대의 학문과 근대>

295-297

  헬레니즘 시대와 고대의 자연과학적 관심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 기초를 놓은 수학의 형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플라톤에게 학문이란, 앎을 변함없이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앎이 참으로 지속적인 것, 의심할 바 없이 견고한 것과 관계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플라톤이 보기에 학문은 이데아의 정신적 질서이며, 우리는 수학을 통해 이데아의 정신적 질서에 다가선다. 예를 들어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개의 직각을 합한 값이라는 것은 기하학적 질서에 대한 통찰에 속하고, 이 기하학적 질서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

  세계의 토대가 되고 또 세계를 떠받치는 것은 절대적으로 견고한 질서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은 세계가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다고 본다. 물론 세계의 심연에 있는, 변하지 않고 지속적인 질서는 우리 육안으로, 다시 말해서 감각적 지각으로는 볼 수 없다. 세계가 의존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변의 질서를 밝혀내는 것이 학문의 과제다. 이때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것, 곧 현상들, 그리스어로 파이노메나phainomena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은 하늘의 천체 궤도나 으악이다.

  고대 자연과학은 이 두 축, 곧  현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지속적 질서 사이에서 움직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적 직관으로 현상들을 꿰뚫어봄으로써, 경이로운 자연의 항구적인 질서를 포착하는 일이다. 이 정신적 직관을 '테오리아theoria'라고 부른다. 고대 테오리아의 태도는 자연 질서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다.

  경이로운 자연의 질서가 감추어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플라톤이 처음에 이해하고 끌어들인 정신적 직관은 사물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눈에 다 볼 수 없는 경험세계의 다양성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중요한 최초의 학문적인 개념들은 실재하는 것을 자세히 조사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을 포괄적인 중심사상에 비추어 전체로 해석하면서 생겨났다.

 

300

  일상언어는 생활세계뿐 아니라 시와도 그런 관계를 맺는다. 이때 언어가 헬레니즘 시대의 교육과 학문의 정신을 규정한다. 언어를 말하는 존재인 인간이 중심에 선다. 이런 점이 헬레니즘 시대의 교욱 활동이 지닌 근본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헬레니즘 시대의 교육활동은 최초의 '인문주의Humanismus'로, 로마 지식인의 '인간성humanitas' 을 향한 노력으로 완전히 개화된 인간됨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헬레니즘 시대의 주도적인 철학 학파인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도 이미 인문주의적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복이며, 학문이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일종의 보조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 중심적이고 언어 지향적인 의식 상태는 지구를 우주의 정지해있는 극으로 설명하는 세계관이 잘 들어맞는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스토아철학의 두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클레안테스가 태양 중심적 천문학을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를 신을 모독한 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선언한 사실이다.

 

301

  우리는 헬레니즘 시대의 학문이 공학이나 중요한 기술의 성공을 통해서 이룩한 진보를 간혹 읽을 수 있다. 실제로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자연과학자인, 시칠리아 시라쿠사이 출신의 그리스인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3세기 말에 빼어난 기술을 발명했다. 그리고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이 다시 한번 당대의 온갖 기술적 성취를 모아놓았다. 그러나 고대공학의 성과가 고대학문의 진보에 기여했다고 보기란 어렵다. 이때의 성과는 학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공학의 성과를 확실히 볼 기회가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역사에서 자주 보듯이 공학기술은 전쟁 도구를 만드는 데 쓰였다. 예컨대 아르키메데스가 고안한 유명한 투석기, 헬레니즘 시대가 전개되면서 끊임없이 개선된 조선술 등이 이 시기에 발전했다. 평화적 목적에 쓰였던 것도 많다.

 

304-306

  결국 에피쿠로스도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보고 인간에게 봉사하게 만든 셈이다. 자연이 인간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자연이 인간의 지속적인 행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근대 초의 자연과학이 원자론을 다시 문제 삼을 때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중세 말기에는 자연을 신뢰하는 고대 그리스적 믿음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중세까지는 생활세계에 대한 고대의 인간 중심적 신뢰와 기독교적 창조 사상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되어 유지되고 있다. 사람들은 창조주 신이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질서를 자연에 불어넣었다고 믿었다.

  이 같은 확신은 인간의 정신이 신의 창조 정신과 같은 모습Ebenbildlichkeit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이 신의 질서와 사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이 전제가 중세 말에 무너져버렸다. <성서>상의 기독교적 신은 전능하기 때문에 창조를 통해서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만들 수 있지만, 인간은 감추어진 신의 전능한 의지를 결코 볼 수 없다. 따라서 신이 어떤 생각으로 세계를 창조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이 신의 전능함을 꿰뚫어볼 수 없다는 무력함이,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동기 가운데 하나였다.

  중세 후기에 인간의 인식 범위와 관련된 환상이 깨지자, 신이 인간을 보듬고 생활세계에 안전을 보장해주는 질서를 자연에 불어넣었다는 확신이 더는 유지될 수 없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근대와 근대 자연과학이 시작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근본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신의 창조 사상을 알지 못하지만, 건축가, 설계사로서 신이 어떻게 자연을 배열했는지를 미루어 생각해볼 수는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일종의 기계처럼 자연의 구성 원리와 방식을 학문에서 깊이 생각한다. 이런 구성 법칙을 근대 자연과학은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 까닭은 신의 생각이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감추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사나 기사의 방식으로만 가설을 시험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구조물이 제 기능을 하는지를 충분히 시험해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근대 자연과학은 '실험'이라고 부른다.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건축 기사 역할을 했던 신이 세계를 만든 방식을 알아차리게 된다.

  건축가로서의 신은 자연을 기계처럼, 기술적 도구처럼 조립한다. 다시 말해서 고대의 역학 개념을 발휘하는 셈이다. 고대의 역학이란 이미 언급한 대로 자연을 속이는 일이고, 결국 자연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나서 역학은 반대로 신에 의해서 배열되는 자연의 방식이 되었다. 역학적인 기교와 실험은 더 이상 헬레니즘 시대처럼 학문 발달의 바깥에 머무르지 않고, 근대 자연과학이 구체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된다.

  이렇게 해서 자연 전체가 유일하고 거대한 기계 장치, 설계사의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장치처럼 보이게 되었다. 모든 기계 장치들처럼 자연이라는 기계 장치도 부속품들로 이루어진다. 이 부속품들이 서로 어떤 관계 속에서 운동하는지는 설계사가 만든 규칙이 정한다. 이 운동 법칙에 대한 이론으로서 근대역학이 생겨난다. 그런데 운동은 근본적인 가정을 전제한다. 즉 우리가 구조를 철저하게 규명하려면, 기본 부속품들, 그 구조를 이루는 최소의 물질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런 아주 작은 물질을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 가정했다. 기계론적인 근대 초기의 자연과학이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다시 문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근대 자연과학의 문을 연 기계론적 원자론은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하등의 연관이 없다. 에피쿠로스의 견해는 생활세계로서의 자연의 질서를 신뢰하고, 그 때문에 실험으로 이루어진 역학을 학문의 과정에서 추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근대 인간은 자연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으며, 그 때문에 자연과학을 역학과 실험 위에 구축했다.

  근대는 이렇게 해서 엄청난 학문적 발달을 이루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대한 손실을 치러야 했다. 즉 세계는 점점 더 신뢰할 수 있는 생활세계, 고향에서 멀어졌다. 생활세계로부터의 소외가 오늘날 환경 위기의 시대에 폭발되었다. 우리가 완전히 고대의 인간 중심적인 생활세계에 대한 신뢰, 자연에 대한 신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를 돌이켜 성찰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고대야말로 새로운 생활세계에 정착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유일한 역사적 발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 정신적 직관, 심안으로만 볼 수 있었던 자연은 근대에 이르러 과학적인 자연으로, 모든것이 설명가능한 자연으로 탈바꿈했다. 흥미롭네.

# 마지막 문단에서는, 최근에 정희진처럼 읽기 <파이 이야기>를 다룬 글에서 본 말들이 떠올랐다. 지금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집가서 보고 여기 메모 남겨야지.

#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줄은, 완전히 이해가지 않는 문장.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 <폼페이 | 에피쿠로스는 살아있다>, <라벤나 | 종말을 고하는 고대의 철학적 삶>, <피렌체 |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로마 | 르네상스 사유의 깊이 -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세비야 | 인간 존엄성을 향한 철학적 도정> 도 읽고 싶은데 책이 무거우니 일단 반납을 하고 차후를 기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