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때는 어떤 우주의 한 부분일까, 이 세계라는 책의 몇 번째 페이지 일까. 처음 생각이란 걸 하게 된 동네 언덕 계단에서부터 줄곧, 끊임없이 물어왔다. 나 자신에게 묻고 주변에 이들에게 묻고 책에 묻고 영화에 물었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못했다. 어리석은 질문일까 자책했다. 그러다 만났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이 우주에서 이 시대에서 이 문명에서 이 지구 우주에서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고, 내가 정면이라고 답해주는 시인을 만났다. 이 시로 내 삶이 바뀌진 않았지만 기댈 언덕은 하나 생겼다. 언제나 지금 내가 정면이라는 것.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언덕. 그 곳에 기대어 살아야겠다. 뒤돌아봐도 지금 이곳이 맨 앞이니 그리고 그곳이 바로 끝이니 서두름도 자책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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