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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P의 도시 / 문지혁

장강명이 시켰어요 두번째 책, 내가 참여한 첫 모임 책.

릴레이 서평!

 

<P의 도시> 릴레이 서평
- 지난 2월 18일 <장강명이 시켰어요> 모임 참석자들이 소설 <P의 도시>를 읽고 나눈 이야기를 통해 릴레이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H
2월 17일, 신촌의 카페 ‘P’astel에서 문지혁 소설가의 <P의 도시>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서평집 <한국 소설이 좋아서>에서는 이 책이 ‘이어달리기와 같이 끝없는 고통의 전달’을 그리고 있으며 ‘고통이 끝나고 일상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고통이 시작됨’을 느끼게 하고, ‘나 역시 고통을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성찰하게 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저희는 조금 다른 이유로 고통받아야 했는데요, 우선은 책에서 그리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고통’ 혹은 ‘상처’가 지나치게 관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그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뒤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여 저희는 한국 소설의 진부한 젠더 디스플레이에 대해 P 튀기는 토론을 거쳐,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중심 소재인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각자 타인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 등을 나누었는데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 소설이 상처를 그다지 잘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각종 P 드립이 난무했던 저희의 지난 토론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S
이 책은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고 설켜 있는지를 파헤쳐가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물들의 설정 자체에서 몇 가지 비판점이 발견되었기에 이를 정리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캐릭터 설정이 빈약하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는데, 이는 한평화와 이희광 목사의 경우에서 나타납니다. 한평화의 경우 그가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집착적 측면이 정신병 때문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기보다 오히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었다는 불쾌감을 형성했습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쥐는 인물인 이 목사의 경우 그 중요도에 비해 그 역할이 미비하게 표현됐습니다. 또한 그가 스스로 정체화한 ‘신이 보낸 고통 전달자’라는 역할은 일면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둘째로는 인물의 도구화라는 점을 비판할 수 있는데, 이는 한수진과 황 장로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수진의 경우, 그로부터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책 속에서 그는 다른 인물들의 대사와 회상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즉 이야기의 핵심을 만들어내는 도구적 역할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황 장로는 주요인물들 주변에 존재하는 인물로, 이야기에 매우 파편적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지닌 역할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나는데요. 이 목사에게 총을 제공하고, 그에 의해 단죄 당함으로써 ‘고통 전달자’로서의 이 목사의 특성을 드러내는 역할이 바로 그겁니다. 이러한 인물의 도구화는 이야기의 빈약함을 메우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강조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M
P의 도시는 인물 설정 뿐만 아니라 주요 장면의 개연성에서도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고 있습니다. 특히 사건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발견'에 그 우연성이 집중됐습니다. 강미혜가 한수진이 보낸 메일을 우연히 발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우연성이 발견됩니다. 이 장면은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이후 사건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단순히 '습관적으로', '메일 정리가 제일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며' 메일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실소가 나올 정도로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는 전개라는 인상을 줍니다. 
두번째 장면은 총을 들고 강간범을 찾고 있는 한평화를 오지웅이 역시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한평화가 총을 쏜 뒤 갑자기 오지웅이 나타나 대화를 나눕니다. 깜깜한 밤, 한평화의 명확한 위치도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한평화를 오지웅이 단번에 발견하게되는 장면은 앞 장면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허술한 전개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또다른 H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부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한수진, 강미혜라는 두 여성 인물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총 6명의 등장인물 중 고작 2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여성 인물들을 자신의 목소리나 능력마저 없는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한수진은 이야기 전개에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성들의 육성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녀는 다른 남성들이 전달해주는 이야기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각에서만 묘사될 뿐이며, 그녀가 직접 등장해 자신의 입장과 사연을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또 다른 인물인 강미혜는 지방사립대학 이사장의 딸로 나옵니다. 그녀의 부모는 미혜에게 ‘똑똑한 놈 하나만 잡아와. 그 다음부턴 우리가 해결해줄게’라며 ‘이왕이면 나중에 총장까지 할 수 있는 놈으로 데려와’라고 말합니다. 미혜는 가부장제를 승계받을 남성을 데려오는 존재로만 전락하며, 그녀 스스로 능력을 갖추거나 권력의 주체가 되는 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본인의 능력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의 권력에 기생해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일 뿐입니다. 또한 예쁘고 몸매도 좋은 미혜가 남성 인물들의 은밀한 시선을 받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녀는 다른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됨으로써 또다시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성의 몸이 남성들에게 은밀한 성적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모든 고통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미혜는 자신이 강간당했다고 평화와 지웅에게 말하는데, 이는 평화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할 뿐 만 아니라 지웅이 소설의 비극적인 전모를 알아가는 일종의 계기가 됩니다. 또한 후반부로 가면서 과거의 사건들이 밝혀지는데,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이 고통을 겪게되는 사슬의 원점은 수진의 낙태입니다. 수진을 배신하고 낙태를 하게 한 오지웅에게 한평화가 복수를 결심하면서 결국 모든 인물들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 속에서 여성 인물들은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남성 인물들에 의해 철저히 묵살됩니다. 미혜는 자신을 강간한 자들을 찾아내겠다는 한평화에게 ‘그만하라’고 하지만 그는 미혜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수진 또한 자신의 복수를 대신하겠다며 남동생 한평화가 미국으로 떠나는 것을 반대했지만 한평화는 이를 무시합니다. 여성 인물들의 의지는 철저하게 배제될 뿐 만 아니라, 복수라는 ‘행위’의 주체는 결국 남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바라보는 여성의 고통에 대한 시선 또한 주목할만합니다.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들의 최대의 고통은 ‘낙태’ 그리고 ‘강간’입니다. 그러나 낙태와 강간이 여성의 고통이라는 서사가 오랜 세월 여성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어왔습니다. 이를 21세기 한국소설에서 답습하는 것은 이러한 가부장적 시선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습니다.
개개인 여성이 겪은 개인적 경험과는 별개로, 낙태와 강간이 여성성을 훼손하고 당사자의 삶을 파괴하기라도 하듯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깊이 숙고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D
약 두시간 가량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과연 <P의 도시>에서 ‘P’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 여기 등장하는 누군가들은 그저 하나의 부분(Part)이고 관점(Perspective)이며, 사방으로 흩어진 퍼즐(Puzzle)일 뿐, 이들이 모여 만드는 도시라는 이름의 거대한 모자이크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또 다른 P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분께서 의도하셨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가장 첫번째는 Pain, 고통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고통에 공감을 하며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소설 중간마다 등장하는 자신을 괴롭히는 ‘무엇’에 의해 고통을 받았던 겁니다. <한국 소설이 좋아서>에 수록된 비평에 의하면 이 책은 ‘고통의 전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독서’라는 행동을 통해 고통을 진정하게 느낄 수 있게 된 인터렉티브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두번째는 Pro-불편러의 P였습니다. 일주일 간 책을 읽으면서 ‘내가 혹시 프로 불편러인가?’라는 의심을 모두가 가졌는데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프로 불편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페미니즘의 P입니다. (…)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그려진 여성 캐릭터와 그들의 고통의 묘사가 쉽게 납득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임 이후 참석했던 회원들이 주변의 모든 사물을 P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이 생길만큼 나름의 재미를 준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과연 우리 주변의 또 다른 P는 무엇일까요? 이 도시 속의 P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