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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ook lover

몫 / 최은영

 

8-90년대 운동권의 성지인 인사동의 한 주점에서 알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사장님은 김민기의 기지촌이라는 음악을 틀었다. 김민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낮게 깔리는 기타 소리가 참 좋았던 곡으로 기억한다. 사장님은 나에게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주요 골자는 '미군 나쁜 놈들'이었고, 그래서 그 기지촌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페미니스트를 싫어했다. 1번 방에 온 사장님과 비슷한 또래의 손님들이 페미니스트 굿즈를 나눠 갖는 걸 보시곤, 옛날부터 페미니스트 애들은 피곤하다고 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고 말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고 예민하게 군다고 했다.

 

소설에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96년 이화여대 폭력사태를 다룬 글을 교지에서 읽고 편집부에 들어간 해진, 그 글을 썼던 정윤, 해진의 동기였던 희영. 희영은 92년 가을 미군에 의해 벌어진 기지촌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다루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런 희영에게 정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조적인 모순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돼요. 기지촌 문제는 민족모순, 계급 모순 아래에서 배태된 문제죠. 거대한 구조를 봐야해요. 왜 그 사람이 그때 거기서 살해당했는지. 구조적인 틀을 놓치고 가면 안되죠."

그런 정윤에게 희영은 묻는다. "정윤 언닌 정말 그렇게 믿어요?"